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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Aug 13. 2021

과연 책을 쉽게 읽는 방법은 없을까?

완독과 다독, 그리고 독서법

 모임을 나가게 되니 책을 읽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숙제하듯이 책을 다 읽고 줄거리를 외워야 하는 것일까.

어떤 회원은 책을 밑줄치며 읽고 완독한 것은 물론이요, 유튜브 강의까지 섭렵하여 전문가의 해설까지 노트필기를 하여 보여주었다.

그리고 예상문제를 출제하듯 토론할 질문 꺼리들도 카드로 정리하여 담아온다.

물론 훌륭한 학생이요, 진행자의 입장에서나 모임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분들의 성실과 적극성은 꼭 필요하고 격려할 부분이다.

근데 나는 왜 이런 것들이 삐딱하게 생각이 되는지 나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학교 때 보면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필기를 꼼꼼하게 하는 학생들이 이상하게도 성적이 꼭 좋지는 않았다.

오히려 수업도 잘 듣지 않고 딴청 피우는데 시험을 보면 좋은 성적을 내는 친구들이 많았다

과연 왜 그런 것일까?

나는 사실 선생님의 강의를 잘 듣지 않는 편이다.

선생님이 풀어주는 수학문제가 뭐가 대수란 말인가.

백 번 남이 푸는 걸 보는 거 보다는 한 번 내가 풀어보는 게 나의 방식이다.


책을 열심히 읽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저자의 의도를 무슨 문제 풀 듯이 접근하는 것은 필요치 않다는 생각이다. 

전문 평론가의 해설을 듣고 그건 그런 뜻이였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용하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

작가의  주제가 과연 주입식 교육의 사지선다형 정답 맞추기 처럼 딱 떨어지게 있는 것일까?

책이란 남의 문장으로부터 나의 생각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저자가 책이란 결과물을 출판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 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독자의 선택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한 권의 책을 백 명이 읽으면 백 명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야 제대로된 책이고 독서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 권의 책을 대개의 경우 완독하지 않는다. 게을러서라기 보다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나만의 방식에서이다.

책을 사서 처음부터 쭉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목차를 보고 거기서 관심을 끄는 항목을 본다

그리고 내용이 괜찮으면 몇 꼭지를 더 읽어 내려가고 대부분 거기서 그친다.

대신 그 분야의 다른 저자의 책을 읽어 다른 생각들을 더 첨가시킨다.

책을 짧고 빨리 읽고 다시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한 도시에 보아야 할 것은 너무도 많은데 그걸 다 보자니 시간도 체력도 한계가 된다.

이번에 볼 것 딱 두세가지만 추리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다음 기회로 남겨두는 것이다.

소설 책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보고 싶은 부분부터 보는데 이렇게 보다가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는 앞뒤를 오가며 순서를 바꿔보는데

참 괴상한 독서법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보면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처음부터 연대기순으로 설명하는 역사책은 재미가 없고 지루하듯이 독서 또한 영화처럼 초반의 몇 십분을 몰입감있게 끌고가야 긴장감과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처음 부터 설명하듯 나열하는 영화는 없듯이 배경부터 서서히 구축하는 소설은 마치 엄격하신 아버님과 자애로운 어머님으로부터 1남1녀로 태어났다는 자기소개 처럼

매력 하나 없는 자기소개서가 되어버린다.

나만 이런 요상한 습관이 있는가 의심하였는데 많은 작가들이 이런 방법으로 글을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름 뿌듯해지기도 했다,


김중혁 작가의 '무조건 쓰게 된다' 는 책을 보니 딱 이렇다.

소설의 한 장면을 읽고 다음 장면을 예측해본다는 것이다.

독서란 나만의 생각, 창의력을 기르기 위한 방법이 된다.

그러므로 다 읽지 못했다고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

원래 그렇게 읽어도 되는 거다.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토시하나 안빼고 읽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관심가는 기사만 봐도 되고 급하면 헤드라인만 봐도 된다.


책도 사실 분량이 너무 획일적으로 많다.

왠만한 소설책도 기본이 삼사백  페이지가 넘다보니 이런 백과전서 식  두꺼운 책들에 도전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

읽어야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다 놓고 안 읽는 책이 책장에 수두룩하지 않은가.


책은 관상용 식물이 아니다.

스스로 자라나고 성장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씹어먹고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이라도 틈을 내어 습관을 만들어야한다.

책을 가장 몰입해서 볼 수 있는 곳은 역시 도서관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이 관내에 수십개나 되니 잘 찾아보고 이용하면 자신의 아지트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잘 접하지 않는 분야의 책도 마주칠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다.


 다음으로 추천하는 장소는 서점이다.

서점에는 신간들이 무지막지한 기운으로 나를 부르고 책이 압도하는 공간이다. 요즘 유행하는 베스트셀러로 트렌드를 살펴보는 것도 좋으며 출판시장의 격렬한 마케팅을 느낄 수 있고 또한 책을 읽고 싶은 기운이 샘 솟는다.

그 중에 반짝반짝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책을 짚는다. 그것이 지금  나와의 인연이 닿는 책이며 그 속에 내가 궁금해하던 것들이 들어가 있다고 확신한다.

어느 페이지나 되는대로 넘겨서 한 번 들여다 보면 어김없이 예언처럼 계시가 들어가 있다. 나는 매번 그러한 기적의 순간을 경험하며 서점이라는 곳은 운명이 내리는 곳이라 믿게 되었다.

 

법서설에서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해보라고 설파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남이 말한 것이 정말인지. 계속 부정을 거듭하다보면 남는 것은 생각한다는 팩트 뿐이었다.

이성도 옳지 않고 인식도 왜곡되며 감정은 더더욱 믿을 게 못된다.

결국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은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 뿐이며 그로부터 모든 철학적 사유가 나온다.

여기서 그 유명한 문장이 나온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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