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상해서 더 재미있는 도시

돗토리현 돗토리

by 두경아


돗토리는 일본 소도시 중에서도 내가 편애하는 도시 중 하나다. 그동안 4~5차례 방문했다. 마지막 도토리 여행은 지난해(2023년) 여름이었다.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N번째 취재 차 JR 일본 패스를 가지고 일본 전국을 돌고 있을 때였다.

사실 돗토리 시내는 큰 볼거리가 없다. 버스를 타고 사구까지 나가거나 구라요시나 요나고, 사카이미나토 등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몇 번씩 다녀왔던 곳들이라 시큰둥했고, 마침 비마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카레를 파는 커피숍. 레트로한 분위기의 이러한 커피숍이 돗토리역 인근에 모여 있다.


‘여행에도 권태기가 있는 걸까’

쓸데없는 감상에 빠지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왕 왔으니, 지역에서 유명한 음식을 찾아 먹어보자.’

생각해 보니 돗토리시 인근 도시는 열심히 다니며 여행과 취재를 반복했지만, 돗토리시 자체는 유명 관광지 말고는 기억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인근 유명한 음식점을 검색해 보다가 의아해졌다.

‘00 카레’, ‘XX카레’, ‘ㄱㄱ카레’…

카레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알고 보니, 돗토리가 일본 전역에서 카레 소비량 1위란다. 신기한 건 카레를 대부분 카페(喫茶店)에서 판매하며, JR 돗토리역을 중심으로 카레를 판매하는 커피숍이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검색을 통해 나름 평이 좋은 카레집 한 곳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이라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귀여운 아줌마 한 분이 나를 맞았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메뉴는 무엇인가요?”

아줌마는 내 질문에 소녀처럼 호호호호 웃으며 대답했다.

“다 맛있는데 어쩌지.”

나는 메뉴를 살피다가 메인 요리부터 디저트까지 몽땅 카레로 이루어진 신기한 코스 요리를 주문했다. 정말 돈가스 카레를 메인 요리로, 카레 아이스크림과 카레 커피, 카레 시폰 케이크까지 구성돼 있었다.

'카레 커피는 대체 무슨 맛일까?'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밀려왔다.

카레 쉬폰 케이크와 카레 아이스크림, 카레 커피로 구성된 런치 코스. 생각보다 맛있었다.

온갖 카레 음식을 맛보고 있는데, 노르웨이 커플이 들어와 내 옆 테이블에 앉았다. 두 사람은 내 테이블 위의 메뉴를 유심히 보는가 싶더니, 아줌마를 불러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아줌마는 대답 대신 난감한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가 통역을 좀 해줄래요? 영어를 잘 못해서...”

원래 사진을 찍기 전, 여행작가들은 주인에게 싹싹할 수밖에 없다. 음식뿐 아니라 가게 이곳저곳을 사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마” 하고 커플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노르웨이 커플은 내게 말했다.

“포크커틀릿이 뭔가요?”

포크커틀릿이면 돈가스를 영어로 번역한 것인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돈가스가 포크커틀릿이라 포크커틀릿이라고 한 것인데, 포크커틀릿이 무엇인지 물어보신다면 -_- 난감하다. 아줌마의 기대의 부응하기 위해 뭐라도 말해야 했다.

“음... 포크커틀릿은, 프라이드 포크예요. 돼지고기를 튀긴 거.”

내가 말하면서도 무슨 차이인지 모를 지경. (슈니첼 같다고 할걸!) 그런데 그들은 내 설명을 듣더니 그제야 이해한다면서 웃어 보였다. 나는 혹여나 그들이 이해한 것과 메뉴가 다른 게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들은 서빙된 돈가스 카레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그리곤 내 테이블에 있는 카레 아이스크림과 카레 커피, 카레 시폰 케이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선을 의식하곤 내가 말했다.

“카레 아이스크림인데, 다소 맵지만 먹어볼 만해요.”

그러면서 본격적인 통성명이 시작됐다. 내가 한국인인 걸 아는 그들은 반가운 얼굴을 했다.

“우리도 2년 전 서울 여행했는데. 이모가 한국에 사시거든요!”

노르웨이 커플의 한 마디에 갑자기 마음이 활짝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약간 속이 좁은 이야기지만, 일본에서 만나는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배가 아팠다. 심지어 호스텔에서 만난 남미 친구에게는 “일본보다 한국이 더 재미있고, 맛있는 거 많아”라고 속닥거리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이들에게 더 친밀한 마음이 들었다. 카레 시폰 케이크라도 덜어줄 기세였다. 그들은 내게 돗토리 관광지를 알려달라고 했다. 마침 관광 센터에서 받아온 최신 영어 자료가 있었다. 나는 아낌없이 그들에게 몽땅 넘기며 핵심 포인트를 짚어줬다.

"여기, 여기는 꼭 가봐. 재미있을 거야!"

“고마워!”

“어차피 나도 공짜로 받은 건데, 뭘! 좋은 여행하길 바라!”


훈훈한 인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아줌마가 따라 나오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거 통역비예요. 아까는 고마웠어요.”

카레 쿠키였다. 온통 카레로 점철된 하루였다.






* 돗토리 여행 정보는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에 담았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낯선 도시에서도 단골 가게는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