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가와현 가마쿠라
“시라스동 먹어봤어요? 이 지역에서는 시라스가 가장 유명해요.”
가마쿠라에서 머물던 숙소의 직원이 내게 말했다.
“시라스요?”
내가 되묻자, 그는 자신의 휴대폰 속 사진을 보여줬다. 속이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한 생잔멸치(정확히는 멸치나 정어리의 치어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전날 갔던 고마치 거리에 늘어선 음식점, 그 앞에 놓였던 입간판 속 음식 사진들. 솔직히 그 식재료가 잔멸치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 아는 대로 인식하는 법이다.
“시라스 피자도 있으니 먹어보세요.”
그 말에 설마 했던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잔멸치였어, 피자 위에 토핑으로 올린 그 부스러기 같은 식재료가!’
잔멸치를 알아채지 못한 건 첫날부터 너무 정신이 없었던 탓이다. 일정이 아니라 날씨가 그랬다. 가마쿠라역에 도착해, 걸어서 10분 거리쯤 되는 고마치 거리를 지나 쓰루가오카 하치만구 신사를 돌아볼 때만 해도 쨍했던 날씨가 되돌아 나오면서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벚꽃이 피어 더욱 아름다운 참배길 단카즈라를 걸을 때 구름 움직임과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결국 빗방울이 후두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덕분에 제대로 둘러볼 겨를도 없이 바로 ‘에노덴’을 타고 숙소로 들어온 게 바로 전날 밤이다.
비는 밤새 무섭게 쏟아졌으나, 다음 날 아침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을 드러 냈다. ‘이런 게 바로 해양성기후인가’ 생각하며 숙소에서 몇 발자국 걷지 않았는데 곧장 바다, 이른바 태평양이 펼쳐졌다. 벚꽃 만발한 봄이었는데도 서핑보드를 들고 다니는 서핑족들 의 모습이 보였다. 유이가하마 해수욕장. 만화 <슬램덩크>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 리> 배경으로 수차례 등장한 곳이라 낯설지 않았다. 유명세와는 달리 서핑족과 어부가 섞여 있는 소박 바닷가.
어쩐지 비현실적인 기분으로, 사가미만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 가마쿠라에 대한 여행 정보는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