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떠나온 베를린 여행이었다.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걸까. 시내에 있는 숙소는 이미 만실이거나 지나치게 비쌌다. 결국 시내에서 40분이나 떨어진 호스텔을 겨우 예약했다.
도착해 보니 뭔가 이상했다. 분명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는데, 지나치게 번화했다. 동일한 호스텔의 다른 지점! 내 숙소는 그곳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시간은 이미 저녁 8시 30분쯤. 마음이 다급해졌다.
숙소로 가는 버스는 40분에 한 대씩 다녔으나, 다행히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저 멀리 정류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 버스를 놓치면 4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온 힘을 다해 달려 가까스로 버스에 탑승했다.
좌석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휴대폰이 보이지 않았다. 세 개의 가방과 캐리어까지 열어 샅샅이 뒤졌지만, 나온 건 조금 전까지 휴대폰에 꽂아 두었던 보조배터리 뿐이었다. 내가 당황하니 버스 승객들도 술렁였다.
휴대폰이 없으니 모든 것이 중단됐다. 당장 내려야 할 정류장조차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출발했던 정류장으로 돌아가는 것뿐.
버스에서 내린 뒤 되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릴 여유도 없이 무작정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상점 하나 없는 어두운 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빠른 걸음으로 20분쯤 걸었을까. 저 멀리 정류장이 보였다. 때마침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을 보니 ‘누군가 가져갔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밀려왔다.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길바닥을 눈으로 훑으며 다가갔다. 그때 정류장에 서 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보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내 휴대폰을.
그는 아마 꽤 오랜 시간 동안 서 있었을 것이다. 시간은 30분쯤 흘러 있었다. 그는 내가 휴대폰의 주인인걸 깨닫고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그에게 전화기를 받아 든 순간, 주책맞게도 눈물이 흘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요즘 사람들에게 휴대폰이란 얼마나 큰 의미를 담고 있나. 그걸 아는 그는 누군지도 모를 휴대폰 주인을 늦은 시간까지 기다려 준 것이었다.
여러 문제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독일은 여전히 독일이다. 무뚝뚝하지만 정직하고 속정 깊은 독일인들. 그것이 내가 독일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