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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록 Feb 06. 2019

메이트(2019) 측은하고 매력적인

이름지어지지 못한 2010년대의 은지와 준호들, 그리고 심희섭.

이 영화 속 인물들, 익숙하지 않은 동시에 익숙하다. 현대 언론에서 한창 조명 중인 '신인류 90년대생'들이 이 영화의 중심이다. '신인류'는 80년대 후반 생에서 90년대생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2년 전에 만들어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어느 정도 '신인류'에 들어온다. 무언가가 전 세대와는 다른 '신인류'가 중심이 되는 영화.


또한 <메이트>는 서로에게 이름지어지지 못한, 규정되지 않는 우리 시대의 은지와 준호들의 이야기다.  우리 세대의 흔한 이름인 은지와 준호. 아마도 흔하고 평범함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작명이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는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은, 어딜 맘 놓고 따라가기 어려운, 아직은 젊은데 또 벌써 나이들어버린 인생의 어느 무렵을 담백하고 은은하게 그렸다. 어찌 보면 매우 심심하게 그렸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심심함과 확실치 않음을 큰 매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쓰는 글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 부분이 부정적으로 해석될 것 같지는 않다. 

같이 밥 먹고 놀고 영화보지만 사귀지는 못 하는 준호와 은지. 연애 상대는 커녕 자신 하나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는 20대의 연애를 보여준다. 그들은 연인이 아니지만 친구만도 아니다. 남녀 친구 사이에서는 이성관계에서의 스킨십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저 이름지어지지 못한 채 있는 시간이었다. 소중한 관계에 많이 언급되는 김춘수의 <>이라는 시에서는 '불러주는 것' 그리고 '이름지어주는 것'에서 오는 관계의 변화에 대해 말한다. 좀 더 확고한 사이, 서로에게 확실한 역할 그리고 책임. 하지만 우리 시대의 연애는 그 규정을 점점 물 빠지듯 흘러 나가는 것이 있다. 바로 책임. 스스로의 인생도 온전히 책임지고 데려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나도 힘든데, 다른 누군가의 그 어떤 것까지 책임지기는 어렵다. 그 것이 가족이어도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부모를 책임 지지 못하는 세대, '단군 이래 부모 세대보다 못 사는 세대'가 현재 경제활동인구의 한 가운데에 있는 세대이다. 물론 90년대생 혹은 80년대 후반 생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그들이 '특히' 그러할 뿐. 하지만 이 영화의 성과라 할 수 있는 점은, 그 세대를 처량하고 불쌍하게만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완전한 객체로 물러나서 인물을 보면 답답하기는 하다. 예를 들어, 또다시 말도 안 되는 관계로 회귀하여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은지의 모습, 좋아하면서 표현은 못 하는 준호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감상을 기록하고 생각을 적어 두기 전에 이번에는 인터뷰 기사 등을 먼저 보고 가볼까.

[SE★인터뷰] 심희섭 “‘메이트’ 연애를 해봤다면 누구나 공감하는 영화”
심희섭은 ‘메이트’에서 프리랜서 사진작가 준호 역을 맡았다. 상처 받기 싫어 안으로 숨는 남자 준호는 소라게를 키운다. 소라게는 연인과의 관계에서 한 발씩 물러나는 상황을 자주 연출하는 준호의 속마음을 상징한다. 그렇다고 준호가 마냥 비겁하고 밉지만은 않게 그려진다. 정대건 감독은 “극중 준호라는 캐릭터를 설정할 때 관객들이 마냥 준호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에 매력적인 얼굴을 가진 심희섭 배우에게 제안하게 됐다. ”고 에피소드를 전한 바 있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VE4W7X7DR


이 인터뷰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관객들이 마냥 준호를 미워하지 않게 매력적인 얼굴을 가진 배우 심희섭을 기용했다는 점이다. 과연 그는 매력적인 얼굴을 가졌다. 이 글의 제목으로 삼은 '측은하고 매력적인'은 거의 심희섭의 얼굴과 그의 연기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다. 그는 어떤 엘리트를 연기하여도(작은 신의 아이들) 치명적인 상처를 바로 얼굴 뒤에 숨기고 있고 어떤 정의로운 발언을 하는 역할(변호인)에서도 연민이 스미게 한다. 아예 대놓고 측은하고 안쓰러운 삶을 연기한 <흔들리는 물결>과 자신을 보지 않는 매력적인 여성을 바라만 보는 <사랑의 온도>에서의 역할도 잊을 수 없다. 또한 배우 수영과 함꼐 연기한 <알 수도 있는 사람>에서는 극의 시작부터 죽는다. 그리고 내내 그의 흔적을 찾아 헤매인다.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혹은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갈 것 같은 인물이 주로 그가 그려온 인물들이다. <족구왕>에서 방긋 웃으며 전역을 알리러 온 그의 얼굴이 참 반가웠다. 이번에는 그리워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는 참 매력적인 배우다. 언젠가 그에 대해 글을 쓰고자 했는데 잠시 남기려던 몇 글자가 한 문단이 되어 버렸다. '심희섭의 청순한 얼굴'에 대해서는 곧 또 말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한다. 블로그에서 일단 <작은 신의 아이들> 글을 옮겨 담아야겠다. 살짝 언급만 하고 넘어가면, 그가 잘 성숙한다면 그는  이선균의 계보를 이을 것이다. 길쭉하고 넙데데한 '무'상을 가진 모성애를 자극하는한 남자의 얼굴이 되어 있을 것이다. 생활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해내는. 그의 청순함이 어디까지 성숙해질지, 짜증연기 같이 그만의 어느 한 분야를 잡아낼 수 있을지, 그의 연기 미래가 기대된다.

[SE★인터뷰] 심희섭 “‘메이트’ 연애를 해봤다면 누구나 공감하는 영화”
“ 연애를 하는데 있어서도 취업이나 생활고 등 경제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특히 20대에겐. 이 둘의 사랑이 현실적으로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다. 위로보다는 공감을 더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저희 영화는 멜로 영화에서 보여질 만한 게 별로 없다. 화려하기 보단 현실감 넘치는 장면이 많죠. 어찌보면 ‘연애의 목적’이 조금 더 어른 버전이라면, 우리 영화는 풋풋한 20대 버전이지 않을까 싶다. 성장해가는 어떤 개념 면에서.”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VE4W7X7DR

그리고 인터뷰 글 중 심희섭 배우의 말이 인상깊다. 위로보다는 공감을 더 하게 될 영화라고. 

그렇다. 나는 영화에서 위로가 되는 부분을 많이 느끼지는 못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 번의 큰 위로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생각보다 흔한 이 둘의 이야기는 그의 말대로 '위로보다는 공감'을 샀다. 


일종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20대 버전의 연애의 목적'이라는 말로 그에게도 이런 면이 있구나 싶었다.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지만 본래 그리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라는 인터뷰 내용을 꽤나 훑었었는데, 본인의 생각을 피력하는 데에는 적극적인 것 같다. 그 덕에 20대의 연애의 목적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직은 20대인 나도 생각해보는 연애의 목적. 무엇 때문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마주하게 되는지, 여러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연애 비슷한 것'이라도 하는 우리 신인류들에 대해 조금은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보면


그에게는 가끔 영화도 보고 가끔 밥도 먹는,

여자친구가 아닌, 

어머니가 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어린애이처럼 생각하는 것을 못 견뎌 한다. 그는 사랑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전적으로 생계를 책임질 수 없으니 아직은 소녀같은 어머니에게 확실히 무언가를 말할 수 없다. 


마냥 받기에는 자립심과 자존심이 강하고 마냥 주기에는 현실적으로 가진 것이 없다. 


내 얘기인가. 

호언장담 못 하는 자식 세대. 이 게 내가 포함된 신인류 세대를 표현하는 키워드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주 어린 초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그러지 않았다. 호언장담 할 수 있었다. 

좋은 대학에 가겠노라고, 장학금을 받겠오라고, 빨리 많이 돈을 벌어서 호강시켜 주겠노라고-.

허나 지금 신인류들은 자식의 특권인 공수표를 날리지 못한다. 규정되어 버리면 실망이 더 커진다. 실망이 너무나 두렵기에 공수표는 주머니 속에서도 꾸깃해진지 오래이다. 

이 영화의 장면들 중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을 들게 했던 장면이다. 아마도 저렇게 비좁은 이유는 코인노래방이기 때문이겠다. 


신인류의 스트레스 해소창구인 코인노래방. 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이다. 

코인 노래방에 대해서도 글로써 다루어보려고 했는데, 나중에 자료 화면으로도 쓰게 될 사진이겠다. 


'그럼에도' 젊음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장면. 저 둘이 만드는 장면이 너무 아름답다. 아니 예쁘다. 그 젊음이. 내 젊음도.

그가 키우는 애완동물도 그를 나타낸다. 

이 거 하나는 분명히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작은, 내게 애정과 의존까지 갈구하지는 않지만 살아있는 생명체. 

'그럼에도' 그들은 너무나 예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젊음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저 둘은 지금 저 둘이 얼마나 예쁜지 아마도 모를 것이다. 코인 노래방에 이어 아름다운 그들의 함께함, 데이트.

그리고 거의 가장 후반부의 장면들.

인상적이었다. 


이제와 글을 마칠 때 즈음 되어서 말하자면, 드라마는 신인류의 연애담을 그린다. 사귀는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관계. 옛 사람과 현 사람의 경계도 없이 지내는 은지와 책임질 수 없어 상처를 주고 밀어내는 준호. 그들의 한 낮의 그리고 한 밤의 연애를 그린다. 그들은 일도 중요하고 연애할 여력은 없지만 온기는 필요로 한다. 


다음 번에 잘 하자는 게, 다음 사람한테 잘 하자는 거야 아님 다음에 또 보자는 거야? 

은지의 물음에 준호의 머뭇거리다 하는 대답이 잘린 채 엔딩 크레딧은 올라간다. 

아마도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이 아니었을까. 내 마음의 답은 그랬다.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를 둘러싼 과정이나 양상들이 변하겠지.

그들이 자리를 잡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확신이 생길 때 즈음에는 이 답답하고 불명확한 '인간 관계' 관계에 이름이 붙여질 것이다. '연인' 혹은 '사랑하는 사이', '사귀는 사이' 등으로. 

언제나 매력적인 얼굴인 심희섭 배우. 

어떻게 보면 매우 예쁘고 어떻게 보면 엉뚱발랄한 색깔 고무찰흙같은 배우 정해성.

촬영 비하인드 컷

세상의 중심으로 서지는 못했지만 함께 설 사람은 필요로 한, 그저 한 세대의 평범함을 한 템포 느리고 답답하게 잡은 <메이트>였다. 그저 그들에게는 중심을 잡을 시간과 온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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