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토토로(2001), 내 인생의 요정.
한국 나이로 10살, <이웃집 토토로>는 9에서 10으로 넘어가는 어떤 날에 찾아왔다. 토토로는 어린 시절을 두 손으로 가득 담은 듯한 향수를 데려온다.
계속해서 옷을 만들고, 그 과정 속에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금자금 육체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20대의 마지막에 서서 가만 생각하면, 무언가를 쉬지 않고 하면서도 그 사이사이 '생각 없음'과 '생각 과함'을 헤매고 다녔던 것 같다. 자기 주관이 확고하고 생각에 '무름'이 없다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사람임에도, 다른 사람도 그에 이견이 없는 사람임에도 찬찬히 생각하면 그랬다. 정신없이 바쁘다가 언젠가는 내가 다른 사람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길을 무빙워크라 생각하여 그에 가만 올라타고 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스물여덟, 스물일곱에는 스스로에게도 외부에도 반항하고 또 방황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유 없이 힘들어서 힘이 안 날 때에도 실과 바늘, 천이 있는 공간에서 '오늘의 작업' 할당이 있는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불편한 마음을 덜어내며, 당장의 완성은 없는데 손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고요한 분주함으로 하나의 작업을 또 끝내었다.
지어 입는 것만 올리다가 이번에는 번외로 지어 메기로, 노트북을 넣고 다닐 가방을 만들어 보았다. 내게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를 수로 놓아 만든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건, 애착 인형을 매일 들고 다니는 기분였다.
살펴볼 예쁜 구석 1
나름의 디테일은 이렇게, 줄을 조여서 가방 입구를 좁게 만들면 나오는 사다리꼴 모양.
노트북을 넣으려고 가로가 긴 직사각형 가방을 만들었는데, 항상 노트북을 넣고 다니진 않을 것 같아서 끈을 넣어서 입구를 조일 수 있게 해 보았다.
다 펼치면 이런 직사각형 모양이 나온다! 이 모양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언제나 따뜻한 사진 나오게 해주는 작업실의 전등.
2019년 7월 18일에 저렇게 그림을 그려서, 이런 가방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는, 가방을 짓기 시작했다.
사실 완성은 오래전에 했다. 지난여름 수도 없이 자전거에 올라타고 맛있는 빵집을 찾아다니고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만들었다. 다정한 사람을 곁에 두고 행복함을 느끼면서 어떻게 일상을 부드럽게 채울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었고.
하루씩은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작업실에 가서 수를 놓거나, 재단을 했고 또 미싱을 만졌다.
살펴볼 예쁜 구석 2
사실 이 토토로와 식물 자수가 없었다면, 이 가방은 만들어 메기보다는 그냥 캔버스백을 하나 사는 게 경제적으로는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하나 사는 것'보다는 그 물건의 처음과 완성을 내 손으로 해나가는 시간은 나를 좀 더 고요히 만들 때도 있고 또 언제는 활활 의욕을 타오르게도 했다.
자수는 어디에서든 할 수 있다. 가끔 바늘에 손을 찔리는 때도 있지만.
미싱질과 재단은 넓은 책상과 도구를 필요로 하지만 자수는 실과 바늘 그리고 손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할 수 있다.
브런치에 남기는 꽤 오랜만의 기록인데, 일상인데 일상 같지 않은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해 준다.
저 수국을 놓는 자수 방법이라든지, 나뭇잎을 채우는 방법이라든지.
정말 한 땀 한 땀 자취를 새긴다. 자취의 방정식, 그 걸 설명해가는 양상을 좋아하는데 내가 자수를 그리 잘하지 않음에도, 그래서 한 번 만들었던 옷을 크게 망친 경험이 있음에도 한 번 더 자수를 놓아보는 이유는 내 아주 작은 기록을 그대로 담아주기 때문이다.
어느 하루는 날을 잡고 다음 코트 원단을 고르며 수를 놓았다.
예쁜 구석 3
매번 핸드폰을 찾으려 가방을 뒤적이기 일쑤라, 앞에다가 포켓을 하나 만들고 내가 좋아하는 초록이 식물들로 채워 넣었다.
이렇게 고른 천에 밑그림을 그리고
채우기 시작한다.
각 식물마다 표현 방식이 다르니 신경써 가며 한 땀 엇나가지 않게.
만약 나갔다면 서둘러 수습하고.
식물들의 색을 예쁘게 표현해줄 자수실도 직접 골랐다.
토토로!
나뭇잎과 발톱 포인트가 백미가 되길 바라며 넣었다.
가장 바깥쪽의 스티치를 쩜쩜쩜 박아서 그림 그려놓은 테두리를 채워 넣고!
저 초록 나뭇잎은 내 일상이 희망적이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빛나는 실로 천천히 채워 넣었다.
내가 왜 이 가방에 토토로를 새기게 되었냐면,
내가 자주 가는 화장실이 있다. 그 화장실에는 칸이 2개 있는데 나는 첫 번째 칸만 이용하다가 어느 날은 이용자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칸에 들어가게 되었다. 용변이 영역표시인 동물적 본능을 단지 한자릿수 퍼센트라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유독 한 자리만 이용하다가 들어간 곳인데 이 단순한 사실이 토토로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온 이유는 작게 붙어 있던 짧은 글귀 때문이었다.
"사랑이 많은 사람은 사랑 속에서 살고, 미움이 많은 사람은 미움 속에서 산다"는 영문 글귀를 오래도록 보고 있다가 다른 칸에 들어가니 또 다른 말이 있던 것이다. "사람이 진정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 할 일, 그리고 소망하는 어떤 것이 있는 것이다."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내가 주로 들어가던 칸에서 본 것은 와 닿았지만 평소 내가 하는 생각과 같아서 동요까지는 크게 일어나지 않았었는데 내가 주로 이용하는 용변 자리를 다른 사람이 이용 중이라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다른 칸에서 본 이 글귀에는 상당히 동요되었다. 내가 사랑할 사람과 할 일, 그리고 소망하는 것이 있는 지금의 나, 이미 행복한 삶이라는 것. 멈춰있는 선이나, 저량(stock)을 기준 삼아 행복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원하는 그 시점부터 나는 행복한 사람인 것.
토토로가 내게 주었던 지향점은 순수하고 푸르른 바람 냄새,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그람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18년을 뛰어넘어 2019년의 나에게 토토로는 요정을 데려다주었다. 작은 인형들을 모으면서 토토로적 삶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매일 귓가에 속삭이는 맑은 사람을 옆에 살포시 두고 갔다.
이제 길을 가다가 보이는 토토로에 발을 못 떼거나 이 건 사야 한다며 의지를 불태우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한 행복감을 주는 좋은 사람이 내 인생의 토토로가 되어 주고 있다.
2019년의 여름 6월, 재개봉한 토토로 요정은 내 인생에 요정을 하나 더 선물해주고 갔다. 함께 걸어보기로 약속한 것은 2019년 6월 8일인데 이 사람이 나의 요정으로 한강의 풍경과 함께 삶에 들어온 것은 보름 정도 지난 어느 따뜻하고 물 냄새 짙은 여름이었다. 여의도 한강 공원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다.
자수를 할 때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들고 다녀서, 데이트를 하는 일요일에도 카페에 앉아서 하고 있으니 자기도 해보겠다며 가져갔는데, 음 나보다 잘해버리면 민망하지.
그렇게 완성된 토토로 자수!
번외의 작은 글에 또 하나의 작은 이야기.
토토로 가방 전에 만든 가방이 하나 더 있다. 요정을 위한 가벼운 캔버스 백! 에코레더 가방을 하나 들고 다녔는데 여름이 되니 더워 보일 것 같아서 가볍게 들고 다닐 가방을 하나 만들어 주고 싶었다.
생일 등 기념일에는 '정성보다는 돈을 더 많이 녹여내자'주의인 나는 기념일과 생일을 피해서 정말 아무 날도 아닌 날에 그가 좋아하는 라틴어 문구를 한 줄 수놓은 가방을 선물했다.
참!
번외지만 살펴볼 예쁜 구석
펜꽂이 디테일은 내가 만들어서 넣어주고도 뿌듯한 부분이다. 핸드폰을 넣고 그 앞에 선 하나만 더 박아주면 펜을 꽂고 다닐 수 있는데 핸드폰과 함께 메모장까지 하나 넣어 놓으면 그 날의 아이디어 하나하나를 기록하게 되어서 좀 더 작은 행복으로 풍족한 나날을 보낼 수 었다.
몸에 맞추어 가장의 사이즈도 아담하게 만들었다. ㅎ ㅎ
끈도 만들어주니 회사에서 꽃 모양으로 예쁘게 묶었다고 보내준다.
간단하고 아담하게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손으로도 들고 어깨로도 메야하니 손잡이와 어깨끈은 꼭 각각 만들어 주기!
Dilige et fac quod vis.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요정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그도 사랑과 일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한 가지 장점이자 단점은 내가 쓴 글씨체와 그림체가 정말 똑같이 새겨진다는 것...
의미 있으면서도 악필이 창피하다.
그리고 즐거웠던 자수 및 그림 그리기의 날!
이 걸로 하고 싶다고 도안도 이렇게 뽑아서 가져갔었다. ㅎ ㅎ
눈이 생기기 전의 토토로는 뭔가 토토로에게 실례 같네...
그림 선을 따고 그 안을 물감으로 채우는 작업, 그리고 그림 곳곳에 색을 채워 넣는 작업을 해 보았다.
토토로 가방 만들며 입고 갔던,
연인 원피스.
가끔 이렇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거꾸로 가며 이야기하는 것이 재밌어서.
갈수록 날 것의 토토로가 나온다. ㅋㅋ
물감과 코팅제도 섞어서 넣고
여름에 쓰던 핸드폰 케이스를 대고 사이즈도 맞춰 보았다.
내가 찾아간 나뭇잎 도안.
아마도 구글에서 'Leaf'를 검색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작업을 위해 소재를 고르며 토토로를 가방에 새긴 날로 가 보았다. ㅎ ㅎ
드디어 마친, 여름의 토토로 에코백 이야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