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1992) 원피스
올여름의 첫 작품을 기록하고자 한다.
연인 원피스라 이름 지은 이 옷은 이제 다음 달이면 수업을 들은 지 1년이 되는 중에 처음 만든 원피스이다.
이번 원피스 과정에서 내가 만들고 싶었던 라인은 클래식한 느낌에 라인이 많이 들어간 옷이었는데 차근차근해나가야 하니 비교적 수월한 라인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더 편하게 살랑살랑 입고 다니고 있다.
이번에는 시각화된 패턴 없이 대략적인 구상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은은한 스케치로 진행했다. 재미있게도 디자인보다 원단을 더 먼저, 더 신경 써서 골랐다. 상아색과 하늘색을 고민하다가 여름 하늘색으로 생각했던 그 원단 수급이 안 되면서 영화 <연인>의 소녀(제인 마치)를 떠올리며 상아색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정확한 색상이나 느낌에는 차이가 있지만, 어쩐지 그 생각이 와서는 떠나지를 않았다.
지금까지는 내 취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기록을 했었는데 이제는 그것들이 연결이 되어 오롯하게 나를 적은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먹은 것도 내가 본 것도 내가 느낌 것도,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것도 모두 나이니.
에로티시즘이 드러나는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인데도 이 영화가 예술과 외설의 그 경계에서 자아내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이유영 배우의 <봄>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았었다. 원초적인 아름다움, 실오라기 하나도 사이에 두지 않은 사랑이 오히려 순수해 보였다.
잊을 수 없는 첫사랑, 첫 경험의 순간 가난한 10대 프랑스 소녀, 부유한 남자를 허락하고 처음으로 육체적 쾌락을 경험하게 된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자신에 대한 혐오가 더해 갈수록 소녀는 욕망에 빠져들고 격정적인 관능에 몰입한다. 욕정일 뿐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운명으로 남게 되는데…. - 네이버 영화
이 영화를 어떻게 볼 지,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이런 느낌을 생각하며 지금부터 옷 만들기 과정을 남겨본다.
여성스럽고 걸어 다니며 불편하지 않은 기장에 여유로운 느낌, 그리고 스퀘어넥 라인을 이 옷의 포인트로 주고자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작업이었다.
패턴을 따라 그려서 자르던 방식과는 다르게, 피닝과 시침질로 원단과 패턴을 이어 붙였다.
이번 원단은 많이 하늘거리는 원단이라, 주름이 지거나 접히지 않게 얼마나 조심했는지 모른다.
원단을 계속해서 쫙 펴고 코너를 도는 부분은 피닝 해서 그 길을 따라 넓게 넓게 피닝을 해 주었다.
+ 식서 맞추는 건 기본!
알맞게 잘라서 조각을 하나씩 완성한다. 앞판과 뒤판, 치마폭 등을 조각내어 오려냈다. 기존에 힘 있는 원단을 주로 했었어서 재단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오래 걸리고 난이도도 있는 편이었다.
치맛단은 주름을 줘야 해서 두꺼운 실로 골고루 잡아당기면서 주름을 준다.
잘 잡아당기면서 한 곳에만 주름이 몰리지 않게 조절하고 있다.
중간중간 옷의 완성된 형태를 상상하면서 조립해본다.
잘라놓은 상의 조각에 다트를 주는 과정 상체의 곡선을 살려주기 위해 있는 과정! 패턴에 있는 다트 부분을 잘 박아준다.
뒤판 왼쪽 오른쪽 중간이 나뉘어 있어서 단단하게 이어 붙여서 뒤판을 완성한다.
단단하게 잘 박아준다!
조각끼리 이어 붙여주는 과정 이렇게 펼쳐서 치맛단을 잇는 과정을 준비한다.
이제 윗 단은 옷 다운 태가 나기 시작했다.
시침 핀으로 연결해서 전체적인 라인을 확인했다.
중간중간에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뭔가 만드는 중에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시침질을 하고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과정!
이때 지하철에서 바느질하다가 피 몇 번 봤다. 헤헤.
이때 투명 바느질로 연결하는데 보통 하던 과정과는 달라서 더 집어주는 과정이 들어가는데 처음 해봐서 복잡하게 느껴졌다. 둥그렇게 연결!
거의 마지막 과정, 단추 달기를 위해서 동대문시장에 방문했다.
거의 다 비슷해 보이는데, 내가 만들고 있는 옷의 무드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심사숙고하게 된다.
크기와 모양, 그리고 무늬를 결정!
작은 크기의 흰 단추로 구매했다. 생각보다 개당 단가가 비싸서 놀랐다. 옷에 단춧값으로 6,000원이 넘게 나가다니.
짜잔,
단추만 달면 완성!
완성 바로 전 단계이다.
단추 달기
이번 과정은 특히나 재밌고 기억에 남는 만들기 디테일들이 있었는데,
가장 마지막 단계였던 이 단추 다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머릿속이 엄청 복잡했었는데 손가락 아프게 단추를 단순하게 계속 달고 있으려니 어느 정도는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단순함과 반복성은 때로는 새로운 운율을 만들고 또 때로는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 같다.
완성!
스퀘어넥 라인이 너무 마음에 든다.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듯, 이렇게 가디건이랑 같이 코디해도 예쁘다. 여성스럽게 깔끔하다.
이동하면서 찍어보면 이리 시원한 모습
옷에 집중해서 찍으면 이런 모습이다. 허리를 좀 더 넣어도 좋을 것 같다.
언제 개시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서울에 오는 규랑이와 함께 간 은평 한옥마을 응정헌에 간 날 입기로 했다. 일 끝나고 단정하게 입고 있다가 좀 더 편하고 하늘거리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ㅎ ㅎ 그것도 내가 만든 옷으로.
예쁘게 준비된 소품들도 연인 원피스와 어울린다.
몸에 딱 붙지 않아서 하늘하늘 편안하다.
다음에는 허리 라인을 좀 더 잘록하게 넣어보고 싶다.
단추를 여러 개 달아서, 밑 단추를 살짝 풀어 입어도 좋다.
빙글빙글 돌면 부드러운 라인이 나온다.
새 옷을 입고 기분이 좋아 폴짝폴짝
그리고 이름에 걸맞게, 연인 원피스.
다음은 에코백 작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