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록 Jan 29. 2021

#7 나들이, 알츠하이머는 벌이 아니에요.

KBS 드라마 스페셜 2020

 KBS 드라마 스페셜 7번째 단막극 <나들이>


세월이 켜켜 덧 입혀진 한 배우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우리 대부분은 어려본 적은 있으나 나이 들어 본 적은 없다. 가보지 않은, 그러니까 선택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아 이르지 못한 시간에 대해 우리는 할 말이 없다.


나의 지난 하루에도 표정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엄청나서 한 바닥 정도의 종이에 매일 자취를 남기면서도 이렇게 활동적으로 내 마음은 운동을 했나 싶을 정도인데, 배우의 얼굴까지 보자 나는 그 소용돌이를 감히 가늠해보는 것을 멈췄다. 그저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들이> 극이 시작하며 영란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 시킨 구성이 '적확하다' 생각했다. 문학에서, 그리고 드라마에서 적확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고 우리네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그저 바라보며 시작하는 것만큼 이 극을 잘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있었을까 싶다.


은퇴한 장사의 달인 영란의 레이더망에 물건 하나 못 파는 트럭 과일 장수 순철이 걸려든다. 장사 수업 빙자한 나들이를 함께 다니는 동안, 두 사람의 우정은 점점 돈독해지는데...

음식 장사를 오래 한 영란의 집 앞에 종종 차를 대어 두고 과일 장사를 하는 순철이 오간다. 

치매 엄마와 생때같은 두 아들을 배우자 없이 건사하며 보내던 영란에게는 아직도 그 세월의 정신없음이 생생하지만, 이제 영란의 시간은 한없이 더디고 먼지가 내려앉는 것 마저 보고 있을 정도로 하릴없다.


그러니 장사에 달려들지 않고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 듯하는 순철이 만만스럽고 답답해 보일밖에 없다.

혼자 우두커니 있는 시간이 은퇴한 영란에게는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틈만 나면 자식 자랑이다.


하지만 자식의 자식까지 유학 보내주고 집을 마련해주고 사업 밑천까지 끌어다 줘야 할 자식들은 영란의 은퇴한 시간 안에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답답한 마음을 만만한 순철에게 차비와 수고비를 주고라도 콧바람을 쏘이러 멀리멀리 다닌다.

싱싱한 과일을 떼러 방방곡곡 다녀야 하는 순철이 영란에게는 아주 딱 들어맞는 친구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둘은 점점 돈독해진다.

나이가 들어 더욱 본인의 일대기를 부여잡고 사는 영란이지만, 누구도 집중해주지 않는, 자식조차도 들여다보지 않는 '노인의 삶'을 자연스레 받아주는 것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과일 장수 순철이었다. 


순하고 착해서 독한 구석이 없으니 장사는 잘 할리 만무하지만, 자신만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영란에게는 더없는 단짝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친구는 꼭 성향까지 같아야 되는 것이 아니니까.


영란도 순철에게 흥정이 나쁜 것이 아니고, 장사하는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고,

그것이 장사하는 재미라며 가끔은 장사도 가르쳐주며 둘의 우정은 돈독해진다.

알츠하이머라는 게 뭘 잘못해서 벌 받으시는 게 아니고요.
 본인은 아직 인지 못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 극은 치매의 슬픔과 남루해지는 인생에 대해 중심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치매에 대해 다루는 시간적 비중이 아니라 마음에 다가오는 한 문장 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뭘 잘못했냐, 나는 건강에 나쁜 것도 안 했고, 멍청하게 사는 노인네도 아니고 평생을 수를 세알리며 산 사람이라고 치매 진단을 내린 의사에게 항변하지만 의사는 벌이 아니라고 말한다. 본인은 모르지만 진행 중이라는 말을 한다. 


치매가 그렇다. 본인이 없어진다. 한 평생 치열하고 쉼 없이 살아와서 늘그막에 남은 것은 '그랬던 과거의 나'이고 그걸 쥐고 남은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데 그걸 지워간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힘들게 하면서.


나 니 엄마야, 니 지갑 아니야. 

자식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영란. 가진 거 다 빼주어도 더 주지 못해 눈물겨운 자기 자식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그저 돈을 자기도 달라는 자식에게 드디어 말한다.


나는 네 엄마라고, 지갑이 아니라고.


자아에 균열이 오고 있는 와중에 드디어 자식에게 외치는 선언 같은 한 마디였다.


맞다, 알츠하이머는 벌이 아니다.

우리는 벌을 받을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


그리고 순철과 영란을 보며 나이가 살아온 인생 이력의 차이가 우정에 큰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리 보기 할 수 있었다.


배우의 연기에 대해 얹을 말이 없이, 흘러가는 모습을 그저 감상한 작품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6 그곳에 두고 온 라일락, 나의 미운 구석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