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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록 Jan 04. 2022

청춘이 참 서럽다. <원나잇>

kbs 드라마스페셜 2020

언젠가 내가 다니던 학원이 있던 대방역부터 걸어 노량진역에 도착 이런 생각을  적이 있다.


"어린애들이 여기 오래 있으면  되겠다."

성년의 나이 중 가장 젊은 나날이 뿜어내는 그 생동하는 빛이 사그라들 것 같아서였다. 나는 이제 이십대가 아니지만 그래서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스물이 갓 넘은 사람들 중 무언가 해보겠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오는 빛이 진짜 있다는 거다. 물론 어떤 이유로든 그게 없는 사람도 있고 꽤 오랫동안 지지 않고 빛나는 사람도 있다.


주위에도 시험 준비라는 터널을 지나온 친구들이 있다. 실패  마음 접고 나온 이도, 지지부진한 몇 해 끝에 결국에는 합격을  이도, 시작하고 금방 빠져나온 이도 있다. 아직 그 터널 안을 빠져나오지 않은 이도 있다.

이번에 리뷰할 KBS 드라마스페셜 <원나잇>은 아직 터널 안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비춘다.


주인공은 경찰 준비생, 여자 친구는 임용준비생, 그리고 어쩌다 얽힌  다른 주인공은 공무원 9급 준비생이다. 


00 준비생

너무나 익숙하다.


심지어 남자 친구의 친구의 남자 친구라는 사람을 칭할 때 '삼성 준비생'이라 말하는 것도 실제로 듣고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있다.


 하는 분이시냐는 질문에 " 우리 오빠는 삼성 준비해~" 했다는  듣는데 명치끝이 딱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다못해 이제 기업의 이름이 신분 상태를 나타내는 말에 등장하다니. '어떤' 꿈이 중요하지 않고 '어느' 회사인지, 간판만이 중요해진  같다. 준비생 단어에 수식어가 기업이든 경찰이든 무엇이든, 무엇이 되지 않으면 무엇이 되겠다고 박아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한 명은 몇 해 째 '남 일'에 관여하다 경찰시험에서 근소한 차로 떨어지고 여자 한 명은 기간제 교사로 임용 준비하다 떨어지고 집안의 생계까지 책임지다 나가떨어질 판이고 또 나오는 한 명은 알고 보니 동갑에 시험 준비하다가 어머니의 병환으로 어두운 세계의 끄나풀이 된다.


그렇게 모두 사연이 있는 동갑내기 청춘들인데 그들의 시련 중 자신에 기인한 것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뜻하지 않게 생긴 고통과 좌절에 담가진 와중에 뜻하지 않던 큰돈이 사건의 불씨가 되어 작은 속 안에 감춰뒀던 불안들이 삐져나와 서로를 마주한다.



단막극의 가장 큰 역할은 신인 배우의 발굴과 이미 데뷔한 배우의 재발견이다.



한 해의 굵직한 드라마 라인업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될 리 정말 가능성 낮지만, 단막극은 가능하다. 아들친구 엄마로 이 드라마에도 나오고 저 드라마에도 나오는 배우가 어떤 날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항상 조금만 더 떴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배우의 얼굴을 여기서 보기도 한다. 조조연 정도로만 나오던 배우의 호흡 긴 연기를 보고 싶을 때도 그 마음을 충족해줄 때가 많다.


해가 거의 끝나갈 무렵 보는 단막극이 내게 주는 즐거움이 크다.


이번에는 김성철 배우가 얼굴을 보여주었다.

'한예종 10학번 친구들'로 이미 많은 관심을 끌었던 배우들 중 하나이다. 가장 최근에는 <그 해, 우리는>이라는 SBS 드라마에서 주인공 최우식(최웅)의 친한 친구로 등장하고 있고, 2021년 한 해 <빈센조>와 <스위트홈>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 주었다.


 배우가 가진 장점은 묘하다.


전에 <To jenny>라는 단막극에서 봤을 때의 그 순수한 사랑엔 어수룩한 와중에 음악적 흥이 있는 학생에서 <원나잇>에서 생각은 있고 미래는 안 보이는 노량진의 스물아홉을 거쳐 이 멍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그해 우리는>에서 상처 있는 아이가 그대로 자란 어른의 얼굴을 연기하며 날카롭고 외로움을 담아낸다. 물론 중간에 <스위트홈>에서 '미친 얼굴'을 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그 어느 모습도 어색함이 없다는 것. 입체적인 얼굴도 로맨스물의 주인공(전통적으로 이동욱)형 얼굴도 아닌데 어떤 때는 풋풋한, 어떤 때는 쓸쓸한 사랑을 담고 또 어떤 날에는 청춘의 막막함을 담는다.


그가 보여줄 다른 얼굴 혹은 좀 더 잘 벼려진 칼 같은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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