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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고래 Jun 21. 2020

멀리서만 소중한 것을 찾으려는 우리에게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Onward, 2020)을 보고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Onward, 2020)을 보고


픽사 영화는 '사랑'이라는,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지만 때로는 너무 당연해서 진부하다고까지 느껴지는 가치를 그들의 장기인 기발하고 정교한 상상력과 탄탄한 시나리오로 다양하게 변주하여 따뜻한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애니메이터들의 애정어린 손길이 느껴지는 귀엽고 소중한 캐릭터들까지!) 게다가 미리 관람평이나 줄거리를 보면서 고민하지 않아도 항상 기대 이상의 퀄리티를 뽑아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동시에 깊은 여운까지 남게하는 작품을 만드니 픽사 영화를 보러가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본 '온워드'도 이러한 픽사 영화의 명맥을 잇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스포일러 O, 스포일러 강도 上)



위대한 전사 엄마, 괴짜취급받는 역사덕후 형 발리, 내성적인 소심이 동생 이안

영화 온워드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할 말 하고 살기'와 '파티에 친구 초대하기'를 수첩에 적어놓고 단단히 결심을 해야 겨우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정도로 내성적인 동생 이안과, 식탁에 역사를 재현한 모형들을 진열하고 과거에 있었던 온갖 마법과 역사를 줄줄 읊으며 덕후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형 발리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이안은 16번째 생일을 맞아 드디어 자신에게 꼭 맞게된 아빠의 스웨터를 입고 등교한다. 생일을 맞아 새로운 나로 다시 거듭나리라 마음을 먹고 아빠처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되겠노라 굳게 각오를 다지며 친구들을 생일 파티에 초대하지만, 형 발리가 그의 소중한 보물 1호(라고 쓰고 고물이라 표현되는) 귀네비어를 타고 요란하게 이안을 데리러 오자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던 이안은 초대를 없던일로 무마하며 풀이 죽은 채 하교한다. 

아빠처럼 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한 이안에게 엄마는 아빠가 형제가 16살이 넘으면 전해달라고 한 선물을 이안에게 준다. 세상을 떠난 아빠가 형제에게 남긴 선물은 바로 단 하루 동안 아빠를 만날 수 있는 마법 주문과 지팡이 그리고 피닉스젬. 마법에 대한 모든 것을 줄줄꾀고 있는 발리는 정작 마법을 써서 아빠를 불러오지 못했지만 이안은 얼떨결에 아빠를 불러오는 마법을 성공한다. 그러나 앞에 나타난 아빠는 다리만 덜렁거리는 반쪽짜리 아빠이고, 반쪽만 소환시킨 주제에 피닉스젬은 깨져버린다. 아빠의 상반신까지 소환하려면 다시 마법을 써야 하고, 그러려면 피닉스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안과 발리 형제는 피닉스젬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는 지도를 가진 만티코어의 주점으로 향하며 모험이 시작된다. 


영화를 직접 보시면 시나리오의 구성이 굉장히 짜임새있고 탄탄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줄거리를 더 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초반부만 간단하게 풀어보았다. 줄거리는 아무리 재밌게 쓰려고해도 영화가 가진 매력과 재미를 1%도 못담아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전체 서사구조는 물론이고 모험의 과정도 지루하지 않게 잘 풀어냈다. 그리고 캐릭터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이후 내용과 맞물리면서 소소한 재미를 더 부여한다. 엄마의 위대한 전사 홈트레이닝, 발리가 간직했던 귀네비어의 마지막 흔적, 이안의 학교의 상징인 용, 지팡이의 가시... 보는 사람은 한번 피식 웃고마는 재미요소라도 대충 생각없이 영화를 만들어서는 이런 짜임새있는 소소한 재미를 이끌어낼 수 없다. (이 영화와 관련없는 얘기지만, 애니메이션을 애들 영화라고 우습게 볼게 아니라 잘 만들어진 '애들 영화(개인적으로 이 표현에는 동의 못하지만)'의 발끝만큼도 시나리오를 못쓰는 감독 및 작가들이 진짜 우스운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가볍게 볼 수 있도록 만든 영화도 이렇게 공들여서 시나리오를 구성하는데.. 하아.. 진짜 반성해야된다.)



초반에 마법이 있었던 과거의 역사와 힘들여 마법을 연마하지 않고도 편히 살 수있게 됨으로써 마법이 쇠퇴하게 된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이는 아날로그의 시대가 저물고 주위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된 시대로 접어든 우리의 이야기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삶을 지탱해주던 옛날의 것으로부터 우리는 너무나 빠르게 안녕을 고했다. 아날로그는 낡고, 오래되고,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고 평가절하되며, 과학적이지 않은 요컨대 직감 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치부되어 왔다. 이 영화에서 발리도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는다. 쓸데없이 옛날 역사에 집착하고, 직감을 맹신하는 괴짜 사고뭉치라고. 동생 이안도 형을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한다. 편하게 고속도로 타고 가면 되는데 왜 길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위험하고 울퉁불퉁한 곳으로 가자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단서를 찾고, 피닉스젬을 찾는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쓸데없다고 여긴 발리의 마법 지식과 직감 덕분이었다. 


사랑과 따뜻함, 가족적인 가치를 담은 이야기를 지향하는 픽사이기 때문에 아날로그와 잊혀져가는 옛것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필연적으로 다룰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한데모여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것을 옛날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하고 싶어도 여러 여건 때문에 가족의 정과 온기를 나누는 일이 어려운 오늘날에도, 픽사는 여전히 가족의 사랑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모든 인간적인 사랑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장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픽사의 고집이 꾸준히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특히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Onward'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마냥 앞으로 쭉쭉 나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곁에 소중한 사람이 있기에 가능하다.' 는 메세지인 것 같다. '완벽한 아빠의 소환' 이라는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모험에서 이안이 마법을 사용하고, 난관을 극복하며 앞으로 꾸준히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발리의 도움이 컸다. 발리가 마법 주문과 마법을 실행하는 법을 알려주고, 낭떠러지를 걸을 수 있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고속도로에서 차를 운전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등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안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를 소환하는 여정 뿐만 아니라 이안의 인생 여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빠 대신 발리가 곁에서 자전거를 가르쳐주고, 수영을 함께 했기에 이안은 인생이라는 모험에서 지금처럼 멋진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피닉스젬을 찾아 길고 험한 모험을 하며 멀리 돌아왔지만, 결국 그것은 동네 분수대에 있었다는 것 또한 의미가 크다. 그렇게도 찾고 싶었던 피닉스젬이 정작 가까운 분수에 있었듯이, 이안도 자신의 소원을 아빠와 이루고 싶어서 멀리까지 모험을 했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곁에 있는 형과 함께하며 다 이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빠를 찾아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이미 곁에 아빠 같은 형이 있었고, 아빠와 함께할 행복만큼이나 형과 함께한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이안의 모습이 몹시 감동적이었다.



I never had a dad but I’ve always had you. -Ian

우리도 이안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일상에 무뎌질수록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도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감에 따라 그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을 소중함 대신 당연함으로 채워간다. 그러면서 먼 곳에서 힘들게 소중한 것을 찾으려 애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가 내 곁에서 언제고 계속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떠나면 그 때 비로소 그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일상의 매 순간을 풍요롭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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