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고래 Jun 06. 2020

아빠가 딸에게 전하는 사회생활의 지혜

28년간 회사를 다닌 아빠에게 취준생 딸이 물어본 이야기

이야기의 주제로만 봐서는 아빠와 각잡고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했을 법하지만.. 실은 소파에서 세 가족이 모여앉아 쟁반 받히고 월드콘이나 먹으면서 한 얘기에 불과하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아빠도 가벼운(무신경에 가까운-아빠의 신경은 온통 월드콘을 향해있었다-) 마음으로 말씀하신 듯 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내가 물어본 것은 취준생으로서 궁금한 사회생활 잘하는 법에 불과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아빠의 치열했던 지난 28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것이었기에 그랬을까.


시작은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엄마는 오늘따라 일을 어떻게든 떠넘기려는 상사의 은근한 술수에 평소보다 더 넌덜머리가 난 상태였고,  그 울화의 결과로 죄 없는 시금치는 짜게 무쳐졌고, 나는 평소보다 짜져있었다. 늦은 저녁 친구분과 통화를 하면서 (이미 나는 반복청취했던 레퍼토리를 말씀하시며) 조금 스트레스가 풀리신 듯 했다. 대체로 3번정도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으면서 엄마의 스트레스도 식어가기에 일련의 과정이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건만 오늘은 문득 아빠 생각이 났던 것이다. 


'아빠는 엄마보다 하루동안 근무하는 시간도 더 길고, 한 회사도 더 오래 다니고, 일을 쉬어본 적도 없는데.. 아빠도 엄마만큼, 어쩌면 엄마보다 더 사회생활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을텐데 엄마처럼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서 스트레스 푸는 모습을 본적이 없네? 하물며 가족한테도. 그렇담 아빠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시나..?'


담배, 술자리, 지인 및 친구분들과의 모임, 운동 등 그 어떠한 전형적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어서 더 궁금했다. 그냥 계속 삭히시는건가? 그럼 건강에 엄청 안좋은데.. 의문은 더 커졌고 그렇게 해서 아빠께 직장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냐고 (끈질기게-왠지 딸에게 이런 얘기하는 걸 민망해 하시는듯 했다-) 여쭤보게 된 것이다. 이야기가 흐르고 흘러 그 내용이 어느새 아빠가 생각하는 사회생활을 현명하게 하는 법으로까지 흘러간 것이고. 


아빠는 너무나 당연한듯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지만 그 속에서 아빠가 가장으로서 갖고 있었던 책임감과 인내심은 아빠니까 자동으로 장착되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달관한 태도를 갖기까지 사회에서 수 많은 XX같은 사람들과 X같은 상황들을 마주하셨을텐데 이를 담담히 극복하는게 당연한 일은 아니지 않나. 경험에서 우러나온 아빠의 조언에 내가 알고 있던 아빠가 맞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아빠가 지고 오신 삶의 무게와 책임감을 곱씹으며 존경의 마음과 감사함을 느꼈다. 



1.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문제의 근원이 해결되어야 해소된다.

아부지 가라사대 "맛있는 것을 먹고, 친구를 만나서 얘기한다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이 아니야. 잠깐 잊으니까 풀리는 것 같은거지.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문제의 근원이 해결되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거야."


이 말을 듣고 (약간 과장 보태서) 진리를 깨달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장 사회생활이 아니어도 지금의 나 또한 공부가 안된다고 스트레스 받고, 해야할 공부를 미루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럴 때마다 카페에서 음료를 사 먹는다고 스트레스가 풀리진 않기 때문이다. 시험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가 유발되는 문제의 근원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 때문인데, 이는 내가 공부를 계속해서 실력을 향상시키고 스스로 시험에 합격할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가질 때 비로소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겠는가. 시험 자체가 스트레스의 근원이라 해도, 결국은 합격을 해야 시험에게 이별을 고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너무 당연한 사실을 내가 여태껏 외면한건 아니었나. 묵직하게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그 이후에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갔는데..


나: 상사가 나를 괴롭혀서 스트레스 받는건 어떻게 문제의 근본을 어떻게 해결해?

아빠: 상사한테 질책받지 않게 일을 잘 해야지. 능력을 기르던지.


나: 근데 내가 일을 잘 하는데도 '나' 라는 사람을 싫어해서 감정적으로 갈구고 스트레스 주는건?

아빠: 상사가 꼭 나를 좋아해야 하는 법이 있나? 싫어할 수 도 있지. 그건 그거대로 받아들이고 상사가 나를 덜 싫어하도록 노력 해볼 수는 있지.


나: 동료로 인한 스트레스는? 얌체같은 동료가 있어서 일은 미루면서 공은 챙기려고 하고, 윗선에 잘 보이는 것만 급급해하고. 그런 사람때문에 스트레스 받는건 어떡해?

아빠: 그건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지 뭐. 그렇게 살면 대개는 끝이 안 좋은데 설사 좋게 끝나더라도 뭐... 근데 동료 때문에 감정적인 스트레스는 받아도 큰 위협이 되는 손해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

나: ...


2. 상사와 함부로 싸우지 마라.

(참고로 아빠는 건설회사에 근무하시는,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이다.)

아빠: 현장에서 부하직원이랑 상사랑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알아? 상사가 이길 것 같지? 직원이 이겨. 상사는 직원이랑 얼굴 붉히면서 싸울 수가 없어. 이 때 이겨먹었다고 좋아할 거 없어. 상사가 부하직원하고 싸웠다고 그 직원을 뒤에서 나쁘게 소문내고 욕하고 그러진 않아. 그런데 부하직원이 절실히 도움이 필요할 때 상사가 도움을 주지 않지. 


문득 고2 담임 선생님께 거침없이 개겼던 나의 부끄러운 과거가 생각났다. 객관적으로 유능하고 학생에게 관심이 많은 분은 아니었지만 그와 별개로 고2 때 나의 행동이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것은 나를 계속 부끄럽게 한다. 솔직히 정말 최악의 선생님이셨지만 그래도 감사한 점은 사회에서 상사만큼 냉정하고 모질지 않으셨다는 것.. 그 땐 선생님이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무례하게 기어오르는 어리석은 학생을 받아주시고 담임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3. 내가 한 행동은 반드시 다 나에게 돌아오게 되있다.


4. 현장에서 능력있고 일처리 잘하는 사람은 A급, 일을 몰라도 물어보고 처리하는 사람은 B급, 일도 모르고 하지도 못하면서 자기 손에 쥐고만 있는 사람이 C급이다. 


5. 능력이 없고 일을 못하는 사람은 게을러야 한다. 이런 사람이 부지런하면 그 현장은 망한다.

이 말을 듣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라는 경규옹의 말씀이 떠올랐다...


6. 문제가 생겼을 때 아랫사람 탓하지 마라. 아랫사람의 무능(혹은 실수 등)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지는 거다.


7.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마라. 그건 다른 사람에게 패를 다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공격하기가 너무 쉬워진다.


8. 사람은 모두 생각이 다르다. 나는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A는 B를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C는 B를 이기적이고 얌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은 각자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라.


9. 상사로서 제일 싫은 타입의 부하직원은?

아빠: 음.. 개인주의적인 사람. 현장 업무 특성상, 업무의 주체가 있어도 다른 파트의 직원들도 그 업무에 한 발씩 걸치고 있을 때가 많은데 그럴 때 걸친 발을 빼려는 사람도 있고, 나머지 한 발도 걸치려는 사람이 있지. 그런데 또 좋거나 유리한 일 있을 땐 자기가 하려고 하고. 그런 사람은 좋게 보기 힘들지. 

그리고 책임소재는 상사가 명확히 해줄 필요가 있어. 3명한테 일을 시킨다고 할 때 그냥 3명한테 일하라고 얘기하는 건 일 하지 말라고 하는거랑 똑같은 말이야. 책임져야하는 사람을 명확히 해야 일이 돌아가.  



'개인주의적인 행동' 에 대해서는 유난히 세대 간의 인식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 같다. 과거에는 개인이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조직이 원활하게 운영되는 것이 예외없이 강요되는 미덕이었다면, 지금은 그에 대해 반기를 들거나 그것까진 아니어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도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이 동반되는 조직의 발전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개인주의에 관련해서 무조건 A 아니면 B만 선택하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과업이나 조직에 따라서 개인주의적인 태도와 협력적인 태도 사이에서 현명하게 그 정도를 조절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과제할 때만 봐도 조별과제에는 대충 참여하면서(다 완성된 케이크에 과일 장식 올리는 정도의 노력만 했으면서 곧 죽어도 자기는 케이크를 만들었다고 벅벅 우겨대는 꼴을 볼 때마다 욕지기가 얼마나 치밀어오르던지) 자기 개인과제에만 열과 성을 다하는 인간은 얼마나 상종하기 싫었는지 떠올려보면 내가 어떤 태도로 사회생활에 임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길지 않은 인생에서 나의 인류애를 여러번 시험에 들게하신 분들 덕분에 나는 극단적으로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나를 꼰대라고 비난해도 소신을 굽힐 생각은 없다.


10. 어쨌든, 사회 생활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는 것이다.

이 말은 아빠의 사회생활 아니 인생 전반을 함축하는 말씀이자 내게 해주신 이야기의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사회생활까지 가지 않아도 당장 내가 해야하는 공부 앞에서 나도 조용한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쯤 이런 얘기를  아빠처럼 무덤덤하게 그러나 확신을 가지며 말할 수 있을까.



사소한 계기로 듣게 된 이야기이지만 나에겐 더 없이 소중한 이야기라서 자주 읽고 싶은 마음에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니 혹여 이 글을 다 읽고 '뭐 이런 꼰대같은 이야기를 올렸나.' 이런 생각은 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아빠가 개인적으로 '나에게' 해주신 말씀이고(그것도 내가 먼저 물어봐서 대답하신 것 뿐), 다른 사람들이 꼭 이래야 한다고(심지어 나에게도) 강요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꼰대 소리를 들으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올린다고 미리 말씀드리고 이야기 들은 것도 아니고, 사적인 얘기를 내가 기록하고 싶어서 올린 것인데 아빠가 그런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좀 아플 것 같다. 꼰대로 생각하는 것까진 아니어도 이 글에 공감을 못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생각과 경험이 다른데 어떻게 내 글에 모두 공감하실 수 있겠는가. 아빠가 당신이 살아온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게 해주신 이야기이니 이게 보편적인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빠가 내게 이런 얘기를 해주신 것은 거의 처음이라 내겐 그 의미가 더욱 큰 것 뿐이다. 아빠를 무작정 꼰대로 생각하지는 않으셨으면 하는 노파심에 마지막에 좀 구질하게 얘기를 덧붙였다. (뭐.. 아빠의 부하직원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때론 저도 제가 아빠의 부하직원이 아닌 딸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