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소사이즈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며…
< 뭐든지 적당한 것이 좋다. 의심 마저도… >
마음공간을 써 내려간 지 제법 된 듯 한데 덩달아 이 주제를 제공하는 쇼펜하우어 형님의 챕터도 후반부를 향해 갑니다.
앞서 칼럼에서도 말씀 드린 바, 전반부는 정말 명심보감같은 명제가 많아 그의 진면목을 엿보기 쉽지 않아 조금 아쉬웠는데 후반부는 정말 제대롭니다.
우리가 습득하는 지식, 최근엔 각종 포털을 비롯 소셜미디어는 물론 유튜브를 통해 많이들 익히고 퍼뜨리곤 합니다.
그러고보니 하루 중 대다수 소통은 카톡인데 여기서도 많은 것들이 오가고 있지요.
과거처럼 책을 심독한다든지 매일 아침 신문을 양손에 쥐고 대자로 펼쳐 읽는 건 정말 역사의 한 장면으로 전락한 듯 합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33 번째 주제는 ‘모든 지식을 적당히 의심해보아야 한다’ 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듣고 그걸 배운다고 가정해볼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우선은 조금이나마 의문을 가져보라고 하네요.
이는 단지 옳고 그름의 척도를 살피란 일차원적 이야기는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왜곡된 사실을 바탕으로 마치 사실인양 떠들면서 그들의 돈벌이로 이용하기도 하니 이를 조심하란 뜻입니다.
그나저나 그 형님이 사셨던 세계엔 인스타나 페이스북 & 유튜브가 없었을텐데 지금에도 통용되는걸 보면 정말 고금의 진리는 시간이 흘러도 유효한가 봅니다.
책은 말합니다. ‘지식인의 모습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며 밝히기 위해 의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자 vs 그저 이득을 얻기 위해 세계의 곳곳을 서성이는 자’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중심에 선 자와 변두리를 배외하며 경계를 넘나드는 주변인으로 나눌 수 있을 듯 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시는지요? 전 사실 읽는 내내 뜨끔했습니다.
“(누가 그러런데) 이렇대~ (받은글인데) 이거봐~ (들었는데) 맞대!”라고 하루에도 몇십번 주창하던 자가 저였던 것 같습니다.
쇼펜하우어 형님은 ‘당신이 정말로 궁금해하고 배우길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권하십니다.
왜냐면 그게 진정한 공부라고 하시네요. 참 맞는 말 아닌지요? 왜 우리는 이 맞는 말을 이 런 순간만 기억하고 맞다고 동의할까요.
디지털 대 아날로그란 핑계로 또 급변하는 세상이란 배경을 빌미로 언젠가부터 속전속결이 대세가 됐습니다.
물론 그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순 없겠죠. 하지만 이 책에서 알려준 것처럼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주제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고 하나하나 따져가며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걸 내것으로 만드는 그런 프로세스 장착도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형님께 한 수 배웠네요. 앞으론 적당한 의심으로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앞으로 또 나아가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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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왜 스벅에 가서 조금만 마시고 싶었는데도 기계적으로 ‘톨사이즈’라고 했을까요~ 물론 가게에서 그리 안내한 것도 사실이나, 더 작은 사이즈는 없나요라고 되물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