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교의 공개 수업을 보고
연구년을 하는 좋은 점 중 하나는 수업자에서 참관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집 근처에 있는 자연 속 학교를 방문했다. 학교 공개의 날을 열어 수업을 참관하기 위해서다. 이곳은 일찍이 방송에도 나온 공립 혁신학교다. 학생이 중심이 되고 교사가 주체가 되는 학교, 상식적인 교육에 힘쓰고 수업에 최선을 다하는 학교라는 인상이 들었다. 몇 가지 소감을 정리해 보았다.
- 학교문을 나서면 세계문화유산이 있는데 그에 대한 내용을 인공지능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주변의 어른들. 전문가분들과 직접 인터뷰를 하여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직접 질문하고 듣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학습의 주체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개된 수업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특별한 수업이 아니라 평소 수업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더 실질적인 참고가 되었다.
-교실 뒤판 전체가 자석이어서 공지사항 및 게시글, 학생들 작품을 쉽고 편리하게 부착하는 실용성도 돋보였다. 오픈된 개인 사물함마다 각자 바인더에 교육과정과 학습해 온 자료들을 모아서 배움의 결과물들을 볼 수 있다.
-교실 수업에서 에듀테크 활용은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일반 초등학교에 비해 살짝 염려되나 기초 소양에 충실하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살짝살짝 엿본 수업에 대한 소감이다.
-6학년: 자치회의 하는 수업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주도의 자치회 과정에서 어이들의 쌓인 내공이 보였다. 누구든 스스럼없이 근거에 따라 자기 의견을 발표해서 놀랐다. 존칭 사용을 굳이 안 해도 서로 존중하는 모습은 평소 학교의 철학이 반영된 듯하다. 또한 앞칠판에 게시된 속담. 우리말. 사자성어 쓰기도 눈여겨볼만했다.
-3학넌:모여서 선생님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듣고, 관련 단어를 국어사전을 찾는 활동이 처음에 전개되었다. 조사한 낱말로 예시 문장 만들기도 무척 유익한 활동인데, 직접 화단에 가서 조사한 식물을 보고, 그리고 때론 맛보기도 한다. 화단 가꾸기도 직접 하는 체험활동은 생생한 생명존중 활동이었다. 자유로우나 질서 있는 교실이었다.
-2학년:주위 환경 생태를 소재로 셔츠 디자인 만들기였던 것 같은데 아이들의 자유분방한 교실에서의 의견 나눔이 인상적이다. 밖으로 나가서 직접 각양각색의 꽃잎을 빻아서 셔츠에 물들이는 작업은 이 학교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 같다.
-1학년:한참 글자를 익히는 1학년이다. 자음 글자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말로 선생님과 나누고 쓰는 작업이 포트폴리오로 완성되어 가는 수업이었다.
-5학년 : '푸른 사자 와니니' 읽고 의견 나누는 장면은 재작년 5학년 아이들과 슬로 리딩했던 나의 교실이 떠올랐다. 한 챕터씩 읽어가며 아이들과 내용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가 생각이 났다.
-4학년 : 아이들이 자료실과 교실을 왔다 갔다 돌아다니며 조사하고 글쓰기를 하는데 선생님의 지도가 없이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척척하는 주도성은 이미 몸에 밴 듯했다. 술술 써 내려가는 지역에 대한 조사보고서는 아이들이 살아있는 지역 연계 학습을 하는구나 싶었다.
짪은 장면들만 잠깐잠깐 봐서 수업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수업에 진심인 담임 선생님들의 열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100명이 안 되는 이 학교 학생들은 한 달에 한 번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모여 전체 다모임을 한다. 전교생이 모여 자유 발언을 한다. 스스로 학교의 문제를 찾아내는 주체의식이 돋보였다. 학교 생활 전반에 대한 건의 사안이나 협의했으면 하는 내용을 자기소개와 더불어 발표하는 과정은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자발적 참여가 돋보이는 활동이었다. 동아리별 행사 상품 전달과 생일 축하 노래 불러주기도 있다. 가족 같은 분위기의 학교, 오고 싶은 학교 맞겠구나 싶다. 교내 뒷동산에 있는 숲 체험장에서 보는 학교와 산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초록이 싱그러운 나무 아래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도 멋진 풍경화였다. 학부모들이 학교 교육과정을 공부하는 모임이 있다는 말에 내가 꿈꾸던 학교가 실제로 있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 입학 전, 사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학부모들의 서명은 자칫 지금의 교육에 역행하는 줏대 있는 소신이다. 아이들은 핸드폰 사용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학교를 찾아오는 졸업생들도 교정에 들어서면 핸드폰 사용을 못하도록 하는 방침도 일관성 있었다. 근처에 살아서 자주 둘레길을 도는 곳이었지만 막상 그 속에 있는 이 학교는 주변만 맴맴 돌고 기웃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공개한다는 공문 보고 기쁘게 신청했는데 정말 잘 보고 듣고 느끼고 왔다. 어떤 이들은 이 학교 졸업생들이 일반 중고등학교, 나아가 사회에 적응하는 면에서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학교를 특이하다고 경계하기도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인생에 한 번 있는 유년 시절,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고, 학부모와 학생 선후배들이 가족같이 생활하며, 때로는 점심밥도 소풍처럼 먹는 추억들이 세상을 살아갈 따뜻한 아지트가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 학교가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