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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소풍 Feb 13. 2021

가위 바위 보

상황에 따라 관계에 대처하는 관점

나는 가위처럼, 바위처럼, 보처럼 세상을 대하려고 한다.


가위

가위는 보를 이긴다. 보자기를 싹둑 자르듯이 가위는 보를 이긴다.

우리는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거나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그런 상황에서 때로는 나의 생각에 날이 서야 할 때가 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할 상황이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엉거주춤 넘어갈 때도 있지만 옳고 그름을 가름해야 하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100명이 'yes'를 해도 1명의 'no'가 더 가치로울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위를 든다. 나의 오래된 나쁜 습관을 자를 때, 모두가 눈감아 주고 덮고 넘어가려고 하는 불의 앞에 설 때, 힘없는 누군가 억울한 일을 당해 일어서지 못할 때, 옳지 않음을 보고도 지나치려고 할 때 가위를 든다. 잘리는 것이 아플 때도 있다. 그러나 전쟁에서 다리 부상을 당한 사람이 그 다리를 그대로 두면 살이 썩어 그 독이 온몸에 퍼질 수가 있어서 '절단'이라는 것을 하듯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선 과감히 가위를 든다.


바위

바위는 가위를 이긴다. 가위는 바위를 콕콕 찌른다. 이쪽에서 콕, 저쪽에서 콕 찌른다. 말로도 찌르고 표정으로도 찌른다. 때로는 내 생각이 나를 찌를 때도 있다. 내가 찌르든 남이 찌르든 찌르면 아프다. 그럴 때 마음의 바위를 내밀어야 한다. 같이 찌르면 비긴다.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 누가 뭐래도 꼼짝하지 않는 바위가 되어야 한다. 결국 수차례 찌르던 가위도 결국은 포기한다. 꿈쩍도 안 하는 바위에게 진다는 걸 깨닫는 순간 가위도 결국은 찌르기를 멈춘다. 그러기까지 바위도 조금은 아플 수 있다. 그렇다고 같이 찌르거나 움켜쥔 주먹을 펴서는 안 된다. 익명의 근거 없는 악성 댓글에 시달리거나 남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소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주먹을 움켜쥐라. 그리고 조금만 참고 견뎌보자. 그 또한 지나갈 것이고 조금은 상처가 낫을 수도 있지만 버텼기 때문에 더 단단해지는 바위가 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쌀보리' 놀이를 가끔 했다.'보리'라고 말하며 상대방이 편 손바닥을 치다가 '쌀'이라고 말할 때 상대방의 손바닥에 잡히면 지는 놀이다. '보'는 '바위'를 감싸줄 때 이긴다.'바위'로 '가위'를 이기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바위'는 버텨서 이기는 거지만 '보'는 감싸줘서 이기는 것이다.'바위'가 툭툭 쳐도 보는 감싸줄 수 있다. '바위'가 '가위'를 이기는 것보다 더 넓은 마음이다. 덮어주고 감싸주고 이해해주고 안아주는 것.. 삶에 지친 머리를 기대도록 어깨를 내주는 것이다.'바위'가 툭툭 친다. 그래도 '보'는 안아준다. 그런 '보'에게 갑자기 날 서는 '가위'가 되는 '바위'는 없다. 넓은 손바닥, 감싸주는 마디마디 손가락들이 차가운 바위를 안아주면 서로가 따뜻해진다. 나는 '보'로 '바위'를 이길 때가 참 좋다.'네가 쳤기 때문에 나도 칠 거야!' 그런 마음보다는 '네가 쳤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꼭 내가 아니어도 샌드백이 필요했나 보다'라는 마음으로 보듬어 주면 보듬는 내 마음이 더 평온해진다.


때로는 가위처럼, 때로는 바위처럼, 때로는 보처럼 이겨야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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