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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23. 2022

가족 관계를 통해 본 아브라함의 소명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했습니다. 

교통문화가 발달하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는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 고향과 친척을 떠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의미를 가집니다. 

고대는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나 군인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안전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안전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입니다.

시편 저자는 자녀를 화살로 비유하면서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하면(즉 자녀가 많고 친족이 많으면)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습니다(시127:4-5). 

고향을 떠날 때 문제는 안전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뜨네기요 이주민으로서 정체성이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정체성을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해선 족보가 필수적입니다. 

“가족의 족보는 그들이 누구인지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난민이 되어 버린 아브라함의 가족에게 족보는 특히 중요했습니다”(Randolph& Richard, p.50)


구약의 계보(족보)는 한 사람의 조상을 중심으로 가족에게 씨족으로 그리고 종족을 포함하면서 그것을 내용 속에 남다르게 구비쳐 내려오는 긴 씨흐름을 밝힙니다. 

더욱이 구약의 종족적 개념은 그들의 하나님인 야웨와의 계약적 언약에 의하여 그 정체성의 특징이 확립됩니다(최종진, p.70)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소명 이전에 아브라함의 정체성을 밝히는 족보를 길게 나열합니다. 

노아의 아들과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10:1)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11:10)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11:27)


아브라함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인류의 구원 역사를 계획하셨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한 족보를 선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부름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 가문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후손들에게 전달해야 했습니다. 

“크든 작든 이스라엘 가족은 각각의 구성원들을 그 안에서 교육하고 사회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응집력 있는 조직이었습니다(King & Stager. p.82)

이러한 가족은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생활 영역의 핵심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역사, 신앙, 그리고 전통의 중심에 위치합니다(King & Stager. p.81)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나라를 이루기 위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2).


하나님의 뜻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한 백성을 만들어 이 세상에 소망을 전하는 이들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Wright, P.62-63).

하나님은 바벨이라는 땅, 즉 위대한 메소포타미아 제국 밖으로 아브라함을 불러내십니다(Wright, P.65).

그리고는 제국의 확장 방식(침략과 정복)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합니다. 

그것은 모든 세계, 모든 민족을 향한 복음(좋은 소식)의 전파입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은 곧 온 족속에게 복을 주시는 일입니다(Wright, P.74).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다른 민족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위한 일입니다(Wright, P.75). 

아브라함은 이방의 빛으로 부름받았습니다(사42:6, 49:6). 

이스라엘은 항상 다른 민족들 가운데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의식하며 지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도착한 가나안 땅에는 이미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후 애굽으로 이주했다가 모세의 인도로 다시 돌아온 가나안 땅도 여전히 다른 민족들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여러 민족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이방의 빛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정체성의 정립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창세기는 나그네와 같은 이주민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는 이야기라면, 

출애굽기부터는 애굽의 종이었던 자들이 자유자가 되어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열방 가운데 있는 하나의 백성입니다. 

아브라함의 소명은 열방으로부터 구별해내는 것입니다”(Rendtorff, p.469)


그러나 이러한 의식은 다양한 시대와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 아래서 매우 다르게 표현되었습니다(Rendtorff, p.459)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대로 이방을 향한 빛이 아니라, 오히려 이방 속에서 참 이스라엘로 서기 위하여 이방을 배척하고 멸시하고 나아가 원수시할 때가 있었습니다. 

신구약 중간 시대에 쓰여진 희년서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다른 민족을 배제합니다. 

희년서 15장은 하나님이 오직 이삭과만 언약을 체결(희년서 15:18-22)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민족들 위에 악령을 두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방황하게 한다고 말합니다(희년서 15:30)(김영선, p.23)

그러나 바울은 민족주의적인 유대전통을 따르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할례를 따라 자신들은 할례받은 민족, 즉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브라함이 부름받은 것은 할례받기 이전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인 상태에서 부름받았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자연인으로서 모든 문화권과 모든 민족의 전 인류가 어떤 구별과 차별도 없이 다 포함되어 총체적으로 통합되어 존재합니다(서동수, p.205).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사명이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입니다.

여기서 배타적 민족주의는 무너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낯선 곳을 향해 여행하며 타자들과 공존하면서 복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선교는 낯선 사람들(타자들)과의 만남을 전제합니다. 

선교는 무엇보다 타자들과 계속적인 관계 형성과 대화를 통해 그들에게 아브라함의 복과 친족됨을 전하고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마1:1) 타자들(인류)에게 와서 모든 적대적이고 이분법적인 인간 이해와 관계를 극복하고 차별과 배제의 제도적이고 종교적인 담을 헐어버립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는 인종적이고 종교적 장벽을 허물고 차별 없이 동료가 되고 가족이 됩니다(엡2:19-22) (김영선, p.39-40)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받았던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과 같은 것입니다. 

배제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면서 낯선 이(타자)를 열린 마음으로 환대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복(구원과 은혜)을 마음껏 누린다는 탐욕적이고 기복적인 뜻이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방의 빛으로서 타자들에게 빛된 삶을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나누므로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주셨던 소명이요 믿음을 따라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우리의 소명입니다. 


King J. Philip & Stager E. Lawrence, Life in Biblical Israel(고대 이스라엘 문화), 임미영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Radnolph Richards & Richard James, Misreading Scripture with Individualist Eyes(개인주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윤상필 옮김,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22. 

Rendtorff Rolf, Theologie Des Alten Testments Band 2(렌토르프 구약정경신학), 하경택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2.

Wright J.H.Christopher, The Old Testament in seven sentences(일곱문장으로 읽는 구약) 김명희 옮김, IVP, 2020

김영선, 아브라함 친족 됨에 대한 수용사적인 측면에서의 연구, 선교신학 제65집, 2022. 11-46(36pages), 한국선교신학회,

서동수, 인류통합의 원형으로서 아브라함의 신학적 의미, 신약논단 26(1) 2018.3, 177-214(38pages) 한국신약학회

최종진, 구약성서에 나타난 계보(족보)의 역할, 신학과 선교 18권, 1994, 67-92(26pages),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신학연구소


https://youtu.be/1SnSidYx_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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