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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27. 2022

인정머리 없는 놈

“어휴! 이 인정머리 없는 놈!”

아버지가 내게 한 말입니다.


중학생인 막냇동생이 집을 뛰쳐나갔을 때

온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온 식구가 막내를 찾으러 동네방네를 뛰어다녔습니다.

그때 나는 방구석에 처박혀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무슨 책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그때 즐겨 읽었던 니체나 쇼펜하우어의 허무적 실존주의 책들이었을 것입니다.

제 분수도 생각하지 못하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해설서를 쓰겠다고 설치던 때였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왜 사는지?

의미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던 때였습니다.


매 주일 아버지가 하시는 설교에서 답을 찾지 못하여

불교에 2년간 심취하여 참선하였지만, 거기에서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인생은 nothing이라고 말하는 실존주의자들에게 빠져들었습니다.

자살을 꿈꾸며, 쇼펜하우어의 자살론을 읽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었습니다.

정말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던 때였습니다.


그때

내 등 뒤로 문을 벌컥 여는 급한 바람을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와

쏟아지는 비난은

나를 직격하였습니다.

“막내가 집을 나갔는데, 장남이란 놈이 방구석에 처박혀 나 몰라라 하니.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그리고 문을 쾅 닫았습니다.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며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중학생 놈이 나가봤자, 어디 가겠어. 곧 돌아오겠지.”

그리고 건성건성 골목길을 걷다가 이내 돌아왔습니다.

내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나 살기도 힘든데

내 갈 길도 모르겠는데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관심이 없었습니다.


영국의 보수 정치 평론가 페레그린 워손(Peregrine Worsthorne)은 말했습니다.

“건강한 사회라면 절대로 불행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지 말아야 한다.”

페레그린은 사람들이 긍휼과 자비와 인정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다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후일 성경을 보면서 내 생각이 옳았다고 느꼈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6:36)

인간 본성이 가지고 있는 자비라 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심이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와, 경쟁에서 이기려는 탐욕과, 남들 위에 서려는 승부심이 인간의 본모습입니다.

사람들에게 자비와 긍휼과 사랑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성품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받지 않고선,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선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이는 착한 성품은 남모르는 계산이 깔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받아야 한다.


오늘도 인간의 못된 본성이 자꾸만 솟구쳐 오름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하나님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한 성품을 닮게 하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덧입혀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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