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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Nov 14. 2022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오해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의 가족, 즉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동생 야고보와 형제들과 그의 누이 살로메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역할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지만, 기독교는 이를 애써 외면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으로서 초기 기독교 탄생과 성장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의로운 야고보란 별명을 얻었고, 나중에 순교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야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톨릭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논의를 정립하면서 마리아의 처녀 잉태성과 평생 동정설을 수립하였습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형제를 낳았다는 것은 불경하고, 어떻게 해서든 헐뜯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은 야고보가 아니라 베드로라 하였고, 야고보는 바울의 선교적 활동에 대적한 인물로 묘사하였습니다.

개신교 역시 야고보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예수의 가족은 예수님의 사역을 협력하기는커녕 오히려 대립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요7:5)고 하였고

마가는 예수님의 가족이 예수님을 미쳤다(막3:21)고 여긴 것처럼 쓰고 있습니다.

많은 설교자나 학자는 예수님의 참된 가족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막3:35)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님 가족의 잘못을 설명합니다(Kümmel, p.117).

그런데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수님이 살았을 때는 적극 반대하던 가족이 그가 죽자마자 적극적인 지지자로 돌변한 것을 보게 됩니다.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할 때에 어머니 마리아와 여러 형제가 함께 참여했습니다(행1:14).

특히 가족 중에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가 수립된 직후 핵심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개종한 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썼습니다.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갈1:18-19)

학자들은 그때를 대략 A.D.37년으로 추정하는 데, 그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6,7년이 지난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는 야고보와 베드로였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오(Eusebius, 260?~339)는 교회사를 쓰면서 2세기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 150?~215?)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구세주께서 승천하신 후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구세주께서 자신들을 특별히 사랑하셨기 때문에 탁월한 위치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인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주교로 선출되었다”(Eusebius, p.85)

이는 처음 예루살렘 회의를 할 때에 야고보가 그 회의를 주도했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행15:13).


그렇다면 야고보는 언제부터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일반적으론 부활한 예수님이 야고보에게 나타남(고전15:7)으로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죽었던 줄 알았던 예수님이 살아나심을 보고 믿고 적극적인 신자가 되었다고 해도 설명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가 개종하자마자 예루살렘 교회의 핵심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열두 제자와 70명의 전도대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서게 된 것은 그가 십자가 사건 이전부터 예수님 사역의 적극적인 협력자일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요?


전통적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가족이 예수님의 사역을 반대만 했을까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후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가십니다.

그때 마리아와 형제들이 예수님과 동행하였고, 며칠을 같이 머물렀습니다(요2:12).

이는 예수님의 공적 활동에 가족이 함께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시각에서 학자 중에 몇몇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하는 부분을 재해석합니다.

마가복음 3장 21절의 가족이란 부분의 원문은 ‘hoi par autou’로서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란 뜻입니다.

이 부분은 가족, 친족, 제자들, 군중 등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성서학자 Henry Wansbrough는 새로운 해석을 제안했습니다.

여기서 미쳤던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군중이었고, 미친 것이 아니라 열광했다고 해석하였습니다.

“무리가 흥분했다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렸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데리러 갔다.”(정기문, p.73)

물론 그의 해석을 완전히 옳다고 할 순 없지만, 야고보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 대립했을지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예수님의 사역에 동행하면서 협력했음을 초대교회 외경들이 증언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사탄’이란 책망받았고, 제자들은 서로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 싸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독 예수님의 가족만 믿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할 수 있습니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초대교회의 엄청난 사본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정통 기독교는 이 문서들을  외경이나 위경이라 해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이 문서들이 초대교회 당시 역사적 상황의 일면을 담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중 ‘히브리인의 복음서’나 ‘야고보 제1 묵시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동생 야고보에게 자신이 받으실 십자가의 고난과 그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야고보는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였고, 수난 이후에 만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야고보는 가우겔라(Gaugela)산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빌립보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여동생 살로메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녀가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늘 주님과 함께 걸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여성 제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정기문, pp.80-82).

이러한 사실들을 보면,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면서부터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고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야고보는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을 잘 지켰던 사람으로 의로운 야고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에우세비우스는 야고보가 출생부터 거룩했으며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육식하지 않았고, 분노할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야고보가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하였는지 그의 무릎이 낙타 무릎처럼 딱딱해졌다고 합니다.(Eusebius, pp.116-117)

야고보는 전통을 지키는 보수주의자로서 바리새인들과 잘 지낸 것으로 추정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바리새인들이 상당수 개종했음을 성경은 곳곳에서 보여줍니다(행15:5).

바울이 세 차례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방문했을 때 야고보는 바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행21:20).

여기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흔히 사용하였습니다(Hengel, p.112).


예루살렘 교회를 지도하던 야고보는 유대교의 보수주의자들과 교회와의 긴장과 갈등을 풀어보려고 애를 썼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인 사역을 인정하였습니다(갈2:9, 행15:13-29).

그는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바리새파의 협조가 필수적이라 생각하여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을 것입니다.

바리새파와 대립각을 세웠던 사두개파와 제사장들은 총독 페스투스와 알비누스가 교체되는 과도기를 틈타, 대제사장 아나누스의 부추김으로 야고보를 순교했습니다(Wright, p.323).

야고보는 예수를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하라는 압력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신앙고백 하였습니다.

사두개파는 그를 성전 난간에서 밀어 떨어뜨리고 돌로 쳐 죽였습니다(Eusebius, pp.118-119).

이에 바리새파는 크게 불만을 품고 다시는 이렇게 율법을 범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항의하였습니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의로운 야고보를 살해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Josephus, pp.209-210)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 야고보서를 기록한 저자이기도 합니다(채영삼, p.22).

그는 결코 평가절하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Eusebius, Church History(에우세비오 교회사), 편집부 펴냄, 성요셉출판사, 1985

Hengel Martin, Zur urchristlichen Geschichtsschreibung(고대의 역사기술과 사도행전), 김경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90

Josephus Flavius, Josephus The Antiquities of the Jews IV(요세푸스 자서전과 아피온 반박문), 김지찬 옮김, 생명의 말씀사, 2014

Kümmel W.G., Di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nach seinen Hauptzeugen Jesus.Paulus.Johannes(주요 증인들에 따른 신약성서 신학), 박창건 옮김, 성광문화사, 1985

Wright N.Thomas, 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채영삼, 야고보서의 이해, 지붕없는 교회, 이레서원, 2016

정기문, 예수 가족의 활동에 대한 재평가, 서양고대사연구 63집, 2022년 (pp.63-90)


https://youtu.be/pP2WSsuEl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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