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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Feb 07. 2023

구사의 아내 요안나

예수님의 제자 중에 요안나라는 여제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누가복음에 단 두 번 나오지만, 매우 의미 있는 여인입니다. 누가복음 8장 3절에서 그녀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먼저 이름부터 살펴봅시다. 요안나는 히브리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 유대인입니다(Marshall, p.422). 그녀의 남편 구사는 나바테아 및 시리아 비문에서 같은 이름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방인입니다(Fitzmyer, p.1107)


구사는 헤롯의 청지기라고 소개합니다. 왕은 많은 임시 수입과 개인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지기(epitropos)는 왕의 재정을 관장하는 직책입니다. 로마 제국에서는 비록 원로원에서 임명한 총독이 다스리는 관할 구역이라고 하더라도, 황제는 자기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청지기를 세웠습니다(Barclay p.143). 구사는 헤롯 왕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로서 당대의 실력가요 부와 권력을 쥔 막강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안나 역시 귀족출신으로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짐작됩니다(김중기, p.182). 그녀의 재력이라면 얼마든지 예수님의 선교여행을 물질적으로 후원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그녀가 자기 소유로 예수님의 제자 일행을 섬겼다고 기록하였습니다(눅8:3). 누가복음 24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무덤에 안치되었을 때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가 무덤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가에 따르면 요안나는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그의 선교 여정에 동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어떻게 귀족출신의 부유한 여인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선교 여행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요? 여기 여러 학자의 추측이 있습니다.


먼저 연세대 김중기 교수의 추측입니다. 누가복음 8장의 헤롯은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로서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을 다스리던 분봉 왕이었습니다. 그는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와 결혼하여 세례요한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헤롯의 생일에 의붓딸 살로메가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자 그는 살로메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결국 세례요한의 목이 잘려 쟁반에 담겨 나오자 술에 취한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바로 그런 난장판인 장소에 요안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신실한 유대인으로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생각했는데, 그의 목이 잘려 피투성이 된 채로 나온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돈 많고 권세 많은 귀족들의 허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평소 신임하던 하녀의 권유로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의 메시지를 듣고 예수를 믿고 남편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고 추정합니다.(김중기, pp.183-186).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은 자기 마음대로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따라다닐 수 없습니다. 당시 사회 문화적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여자가 남자들과 함께 여러 날에 걸쳐 숙박해야 하는 여행에 동행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정숙한 여자는 법과 관습에 의해 집 대문을 나서지 말아야 합니다(Jeremias, pp.450-454). 요안나처럼 귀족 부인이라면 더욱 정숙한 태도를 보여야 했습니다. 만일 그녀가 남편을 무시하고 다른 남자와 여행을 한다면 헤롯의 고위 관리인 남편이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남편을 떠났다면 경제적 능력도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후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김중기 교수의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레온 모리스는 그의 주석에서 다른 견해를 소개합니다. 요한복음 4장 46절에서 53절까지 보면 왕의 신하가 아들이 병들어서 고쳐달라고 예수님을 찾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아들이 고침을 받고 신하와 그의 온 집안이 다 예수를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레온 모리스는 고데트(Godet)의 견해를 따라 왕의 신하가 바로 구사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물론 그건 추정에 불과하지만, 제가 보기엔 상당한 개연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도 왕의 측근 가운데 한 명으로서 예수를 믿었습니다(행13:1). 따라서 헤롯 왕실의 고위직 사람들도 여러 명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구사와 그의 가족이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었다면, 남편의 인정과 보호 아래 예수님의 선교 여행에 요안나가 참여하고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것도 쉽게 설명이 가능합니다(Morris, p.213).


한걸음 더 나아가 하워드 마샬은 누가에 반영된 헤롯에 대한 정보는 구사를 통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초대 교회에 아주 잘 알려진 사람으로서 상류층에도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Marshall, p.423). 사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를 비롯한 갈릴리 여인들이 자신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선교를 섬겼다는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독특한 자료입니다.


누가는 ‘여인’이라는 단어를 다른 복음서보다 많이 사용합니다. 누가는 남성 인물과 여성 인물을 균형감 있게 제시하며 기존의 협소한 남성 중심적 시각을 극복하였습니다(Ben, p.129). 예수는 누가복음에서 더욱 여인의 해방자, 여인의 구세주로 나타나는데,이것은 누가 자신이 여성 해방 운동의 선구자로 인식될 수 있을 정도로 여성의 성 차별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김득중, p.91) 김성희 교수는 예수님의 제자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특별하게 여겼다면,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역시 갈릴리 여 제자 중 선택된 자로서 남성 제자 3명과 상응한다고 보았습니다(김성희, P.638). 누가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해서 여성 제자들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이야기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누가가 의도적으로 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귀부인 요안나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헌신하였고, 그의 가정 역시 신실하게 신앙생활 했습니다. 이러한 요안나를 우리 하나님께서 분명히 기억하시고 성경에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참고도서

Barclay William, The Gospel of Luke(바클레이 성경주석 누가복음), 기독교문사, 2009

Ben Witherington III, Women in the Earliest Church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1988)

Fitzmyer A. Joseph, The Gospel According to Luke(1-9)(앵커바이블 누가복음 1) 이두희, 황의무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2015

Jeremias Joachim, Jesrusalem zur Zeit Jesu(예수시대의 예루살렘),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2008

Marshall I. Howard, The Gospel of Luke(국제성서주석 루가복음 I), 강요섭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1996

Morris Leon, The Gosple According to St. Luke(틴델 신약주석, 누가복음서), 이정석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1994

김득중, 누가의 신학, 컨콜디아사, 1991.

김성희, 여성 제자들의 파트너쉽을 통해 읽는 누가-행전 이야기, 신약연구 제9권 제4호 (2010년 12월) pp.625-656

김중기, 여성에게 일어난 신앙사건, 도서출판 참가치, 2006


https://youtu.be/-yu4F3WAK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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