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던 여자아이 와즈다(Wadjda,2012,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룬 영화를 보았다. 사우디아라비아뿐만 아니라 이슬람권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 인권 침해를 고발하기 위하여 만든 영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침해 사례 몇 가지를 보면 아래와 같다.
- 남자 친척의 동행 없이 여행할 수 없다.
- 여자는 차량 운전을 할 수 없다.
- 여자는 남자와 같은 교육도 받을 수 없고 남성과 함께 일할 수도 없다.
- 공공장소에서 낯선 남자와 함께 있지 못한다.
여성의 인권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19세기 들어서다. 그 이전에 여성의 인권이란 없었다. 성경도 중동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에 그 당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십계명에 보면 이웃집의 재산을 탐내지 말라 하면서 재산 목록을 나열하는데 남종, 여종, 가축들과 아내를 거론한다. 중동 문화권에서는 결혼할 때 지참금을 주고 아내를 데려왔기에 재산 목록처럼 생각하였다.
여자는 늘 남자에게 종속되고 보호받는 존재였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큰오빠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남편이 죽으면 장남에게 종속되었다. 만일 아들을 낳지 못하고 과부가 되면 그녀의 재산은 남편의 동생이 전부 가져간다. 대신 그녀는 동생과 결혼하여 그의 보호를 받으며 살게 되었다. 중동의 여성은 일생 남자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여자는 남편을 부를 때 주인이라고 불렀다. 남자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부인을 쫓아낼 수 있었지만, 여자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없었다. 이혼 사유로 힐렐 학파는 부인의 간음에만 국한한 반면, 샴마이 학파는 아내가 접시를 깨뜨려도 이혼 사유가 되었다. 심지어 길을 가다 아내보다 더 이쁜 여자를 보고 마음에 끌려도 이혼 사유가 되었다.
여자들은 가정에서 힘든 일을 감당해야 했다. 성경에 현숙한 여인은 아리땁고 고운 여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억세고 일 잘하는 여인을 뜻한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잠31:10)
그녀가 진주보다 귀한 이유를 11절부터 31절까지 설명하는데 기가 찬다. 그녀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그녀는 상인의 배와 같아서 멀리서 양식을 구해오며 새벽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식구들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며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 포도원을 장만한다. 허리를 동인 모습은 힘차고 일하는 두 팔은 억세기만 하다. 손수 물레질해서 옷을 만들어 온 식구를 두둑이 입혀서 눈이 와도 걱정이 없다. 항상 집안일을 보살피고 놀고먹는 일이 없다. 정말 여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이런 여인이 있다면 슈퍼 우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상속권이나 소유권도 없고 매매권도 없고 그녀가 서원한 것은 남자가 언제라도 무효할 수 있다. (민30:8)
여자 중에 가장 힘이 없는 여자가 자녀도 낳지 못하고 시동생도 없어서 혼자 살아야 하는 과부다. 히브리어로 과부는 ‘알마나’라고 하는 데 그 뜻은 ‘벙어리’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보호자가 없으니 자기를 위해 변호해 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남성 위주의 경제체계에서 과부는 정신적으로 힘들고 외로울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가난하였다.
성경은 사회의 최약자인 과부를 돌보도록 여러 차례 명령하였다.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 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4:29)
특별히 과부를 위하여 변호할 사람이 없기에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27:19, 시68:5. 사1:17)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을 날마다 찾아가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보통 여자는 혼자 법정에 가지 않으며 반드시 남자가 대신 간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녀를 대신하여 송사해줄 남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보호해줄 남자가 없는 과부는 본인이 남자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므로 일반 여자들이 지켜야 할 규범과 예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과부는 깡패처럼 드세게 행동해도 유대 사회는 그것을 용인하였다. 유대의 문화는 명예와 수치를 중시하는 문화다. 사회의 가장 연약한 계층인 과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과부를 제어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날마다 재판관을 찾아가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쓰는 과부를 제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이라도 그녀를 가두거나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아마 남자였다면, 당장에 쫓겨나거나 감옥에 갇혔을 것이다.
이 과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은 사람이다. 무서운 것이 없던 그 여인은 자신의 원한을 풀어줄 때까지 멈추지 않고 간구하였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요지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과부가 재판관을 끈질기게 괴롭혀서 청을 들어준 것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그녀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자의 아픔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하여 기도하라.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피가 호소하는 것을 들으셨던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참고(參考)
1. 유대인 스케치, 알프레드 에더스하임 지음, 복있는 사람, 2016
2. 열린다 성경 생활풍습 이야기 하, 류모세 지음, 두란노, 2014
3. 유대인의 풍습과 관습, 프레드 H. 와이트 지음, 도서출판 로고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