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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pr 29. 2016

누군가 당신을 거짓으로 고소할 때

유대인의 재판

교회를 건축한 후 나는 고소 사건에 휘말렸다.

교회 시공 업자가 누군가에게 돈을 꾸면서 나의 도장을 위조하여 보증을 섰다.  

나는 그 사람을 본 적도 없는데 건축 후 나에게 돈을 갚으라고 고소를 하였다.

법정에 증거로 제출된 서류를 보니 목도장으로 내 이름을 새겨 찍었고, 필체도 나의 것이 아니었다.

거짓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나를 두 번이나 고소하였고, 재판 도중에 다짜고짜 폭행까지 가했다.

재판은 2년을 끌게 되었고, 두 번 다 승소하였다.

억울하게 재판석에 끌려다니며 낭비한 시간과 폭행을 생각하면 나도 고소해서 그 사람을 응징해야 마땅하지만, 목사이기에 모든 것을 덮고 지나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억울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 헤아리게 되었다.


성경에 보면 억울한 재판이 여러 번 등장한다.

그중에 스데반 집사의 재판 사건은 눈여겨 볼만하다.

스데반 집사는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였다.

당시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성경을 토론하는 일이 빈번하였는데 스데반 집사의 지혜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반대자들은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하여 신성 모독죄로 스데반 집사를 고소하였다.

스데반 집사 사건을 다루기 위하여 공회가 열렸다.(행6:10-15)

단 지파의 성문- 재판장은 보통 성문 위에 앉아있고 피고는 밑에 서 있는다.

구약시대에 공회는 사람들이 가장 잘 모이는 성문 앞에서 주로 열렸지만, 회당 제도가 발전하면서 회당에서 하거나 혹은 회당의 부속건물에서 열렸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공회마다 7명의 재판관이 있고 각 재판관은 2명의 레위인을 보조로 두었다.

공회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었고 사형에 해당하는 것은 로마 법정에서 다루었다.

그러나 가끔 그들의 권한을 벗어나는 일, 특별히 종교법을 위반한 중차대한 문제는 공회에서 직접 다루기도 하였다.

스데반 집사의 재판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반대자들은 거짓 증인들을 매수하여 위증하게 했다.

이 사람(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행6:11)

스데반 집사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을 변호하는 설교를 당당하게 하였다. (행7:1-53)

그들은 스데반 집사의 변증적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이를 갈았다.(행:54)

분위기는 스데반 집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였다.

스데반 집사를 향하여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욕을 하였다.  

“그를 죽여라!”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도 그를 대신하여 변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스데반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거기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벌떡 서신 것을 보았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1:56)


일반적으로 성경은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으로 말한다. (시110:1, 막14:62, 골3:1, 히1:13, 10:12, 12:2)

보좌에 앉아 있다는 말은 재판관으로 앉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서신다는 것은 증인으로 혹은 변호인으로 선다는 것을 뜻한다.

눅11:31,32에 보면 마지막 심판 때 남방 여왕(시바의 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한다고 선언한다.


지금 스데반 집사가 분노하는 청중들 앞에서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는 말은 명백히 주님이 증인으로 누가 죄인인지를 증언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스데반 집사가 언급한 ‘인자’는 다니엘 7:13-14에 마지막 때 인자가 모든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가지고 다스리시고 판단하신다는 말씀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 자리에 있는 유대인들도 성경을 공부하였다면, 지금 스데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었다.


그들은 스데반의 이 말에 더욱 격분하였다.

스데반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와! 와!”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이 큰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행1:57)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는 스데반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율법에 의하면 거짓으로 증언한 자는 사형에 처했다.(신19:18-19)

그들은 정당한 법절차를 무시하고 스데반 집사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갔다.


유대인의 관습에 의하면, 정죄 받은 죄인을 동네 어귀로 끌고 가서 돌로 쳐 죽였다.

먼저 죄인의 옷을 벗기고 증언한 증인이 죄인의 가슴을 겨냥하여 첫번째로 돌을 던진다.

그런데 누가는 죄인인 스데반의 옷을 벗기지 아니하고 돌을 던지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의 발 앞에 두었다고 기록하였다.(눅1:58)

누가는 아주 교묘하게 지금 진정한 죄인은 스데반이 아니라 옷을 벗은 거짓 증인들이 죄인임을 밝히고 있다.

유대인의 재판제도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구절을 읽으면서 누가 진정한 죄인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유대인의 관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은 스데반 집사가 천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반겨 맞이하기 위하여 선 것으로 해석한다. (C.H.Dodd, 이상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사건은 명백히 법정에서 벌어진 사건이고 스데반 집사가 자신을 변호하고 증언하는 주님을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어거스틴, F.F.브루스, 크레이그 키너, 그랜트 오스본)


재판관이신 주님이 변호인으로 벌떡 일어나는 것은 스데반 집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것은 마지막 날 누가 심판받고 정죄 받을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주님이 일어서셨다는 것은 공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뜻이다.

지금은 성도가 억울하게 고통당하고 눈물 흘리지만, 이 모든 것을 생생하게 보신 주님께서 마지막 날 모든 것을 심판하실 때 자신이 직접 증인이 되어 주시겠다는 뜻이다.

주님은 반드시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의롭게 판단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죄과를 확실하게 갚으시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자신을 위하여 변호하려고 일어서시는 주님을 보았기에 스데반 집사의 얼굴이 천사처럼 밝아지고 빛날 수 있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이 말은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성도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지만, 그를 거짓으로 고발하고 죽이려고 덤벼드는 그들에게는 무서운 진노가 될 것이다.

부디 주님이 보좌에서 벌떡 일어 서시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정의가 바로 실천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참고(參考)

1) 칼빈 주석 ‘사도행전’, 존 칼빈, 성서교재간행사, 1990년

2) LAB주석 ‘사도행전’, 그랜트 오스본 편집, 김일우, 임미영 옮김, 성서유니온선교회, 2009년

3) IVP 성경배경주석, 존 윌튼, 빅터 매튜스, 마크 사발라스, 크레이거 키너 지음, IVP, 2011년

4) 핸드릭슨 주석 '사도행전', F.F.브루스 지음, 아가페출판사, 1991년

5) 문법적 역사적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신약주석, 송영목 지음, 쿰란출판사, 2011년


유대인의 문화로 성경 읽기 

1. 예수님은 전도할 때 왜 신을 가지지 말라 하셨을까?

2. 어찌 그렇게 매를 맞을 수 있을까?

3. 누군가 당신을 공개적으로 모욕할 때

4. 과부는 깡패다

5. 남의 결혼식을 망치지 말아주세요.

6. 우물가에서 사랑을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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