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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pr 24. 2016

어찌 그렇게 매를 맞을 수 있을까?

유대인의 교육

군에 있을 때 바로 위 고참에게 맞아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에서 불어 선생을 하다 군에 입대한 고참은 무언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졸병인 나를 때렸다. 

그날도 화장실 뒷동산에 끌려갔다. 

“오늘 내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니 네가 열대만 맞아야겠다."

영문도 모른 체 엎드려뻗쳐하고 있으려니 분통이 터졌다. 

자기 기분 나쁜 일이 있다고 아무 상관 없는 나를 때리다니. 

몽둥이로 한 대 맞았는데 정말 아팠다. 

엉덩이를 붙잡고 깡충깡충 뛰는데 고참은 그게 보기 좋았나 보다. 

낄낄거리면서 때리는데 내 평생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요즘은 군대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체벌이 사라져 가고 있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부유한 시대이기에 작은 체벌도 인격모독이라 여기며 바로 경찰서로 달려가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고통을 참고 견디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하였다.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고후11:23-25)

얼마나 아팠을까? 

어떻게 견뎠을까? 

요즘 현대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런데 현대인과 달리 예수님 당시에는 체벌에 대하여 어느 정도 참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 

살아가기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에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 능력을 키워야 했다. 

고대인들은 성인식을 통하여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에 견디고 인내하는지를 테스트하였다. 

더욱이 외세의 침략에 늘 위협을 당했던 유대인들은 자녀를 아주 엄하게 교육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최고로 엄격하게 교육한 곳이 스파르타였다. 

그들은 7살 때부터 군 막사에 들어가서 군사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았다. 

유대인들은 5살 때부터 회당 학교에 들어가 의무 교육을 받았다.

스파르타처럼 교육하지는 않았지만, 5살 아이에게는 버거웠을 것이다. 

그들은 모세 오경 중 제일 먼저 레위기를 가르쳤다.

레위기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정(법)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5살 아이들이 지켜야 할 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학교 공부를 따라오지 못하면 가죽 채찍으로 때렸다. 1)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22:15)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잠23:13)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잠10:13) 


랍비들은 채찍질로 처벌할 수 있는 168가지의 범죄를 규정했다. 

채찍은 소가죽으로 만들었는데 3가닥으로 되어 있었다. 

누군가를 채찍질할 때 아담하고 작은 기둥에 손을 묶어 앞쪽으로 기대게 하고 등을 벗긴 후 어깨부터 허리까지 때렸다. 

유대 사회 분위기에서 채찍질을 당하면서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면, 그 사회에서 매장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고통을 참고 견디는 훈련을 하였다. 

회당 교육은 무료였고, 의무였다.   

아이들로서는 피할 길이 없었다. 

그래도 채찍에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바울이 당한 매질은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매질 중에서 가장 강력한 매질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혹독한 고통이었다.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이 하나님을 찬송한 것은 보통이 아니었다.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하였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그 당시 일반적인 유대인들이 고통을 참고 견디는 훈련을 하였다지만, 바울의 이러한 태도는 모든 사람이 감동하기에 충분하였다. (행16:22-25)


고통을 참고 견디는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볼 수 있다.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시며 인내하시는 모습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수많은 사형집행을 했던 로마 백부장이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아무리 용감하다 자부하던 사람도 십자가 앞에서는 모두 신음을 내뱉고 고통스러워 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금도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로마 백부장은 감탄하여 외쳤다.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막15:39)

백부장의 고백은 예수님을 믿어서 한 고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면서 인내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외친 것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영웅 중의 영웅 아닌가!'

그것은 로마 군인이 내뱉을 수 있는 최대의 찬사였다. 

로마 백부장의 고백을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 만든 영화가 얼마 전에 개봉한 “부활(케빈 레이놀즈 감독, 조셉 파인즈 주연)”이다. 

주님을 따르는 초대 교회 교인들 모두도 환난과 고통을 참고 견디는 데 선수였다. 

그들은 카타콤에서 검투사의 칼날에 혹은 사자와 곰의 이빨 앞에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으면서도 오히려 천사의 얼굴이 되어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 

성경은 크리스천들에게 환난과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고 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참고 인내하며 견딜 수 있을까?

요즘 우리는 너무 편안한 것에 취하여 살고 있지는 않은가? 


주(註)

1) 유대인 스케치, 알프레드 에더스하임, 복있는 사람, 147쪽 이하


유대인의 문화로 성경 읽기 

1. 예수님은 전도할 때 왜 신을 가지지 말라 하셨을까?

2. 누군가 당신을 공개적으로 모욕할 때

3. 누군가 당신을 거짓으로 고소할 때

4. 과부는 깡패다

5. 남의 결혼식을 망치지 말아주세요.

6. 우물가에서 사랑을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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