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공부하다 한국의 대학에 들어간 둘째 딸이 교양 필수 과목으로 “고전 읽기”를 들었다.
“아빠!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 듣겠어."
교과서를 이해 못하겠다고 하소연하였다.
분명 한글로 된 교과서인데 어려운 한자어로 가득하여서 내가 읽기에도 힘들었다.
결국, 둘째가 선택한 방법은 국어사전을 가져다 한 글자 한 글자의 뜻을 밝히고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여 읽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나도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머리가 아플 때가 있다.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뽐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제대로 설명할 능력이 없어서인지 평상시 전혀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만 잔뜩 나열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한글이라고 다 같은 한글이 아니다.
특별히 한자어인 경우는 그것을 자세히 풀어쓰지 않으면,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암호가 되고 만다.
법무부에서는 지난 8월 25일 국민의 일상생활에 직접 적용되는 민법을 알기 쉽게 바꾸겠다고 하였다.
민법의 주요 용어 133개를 알기 쉬운 말로 바꾸고, 어법에 맞지 않은 문장 64개도 순화하였다.
이를테면 “포태한 몽리자들이 통정하여 서손했다.”는 말을 "임신한 이용자들이 서로 짜고 문서를 파기했다.”로 바꾼 것이다.
이건 비단 법률 용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의료, 금융, 행정, 세무, 철학, 신학, 역사 등
조금이라도 전문적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영문학을 가르친 C.S.루이스(C.S.Lewis, 1898~1963)는 이점을 지적하여 말한다.
“우리는 일반인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청중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청중의 언어를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경험으로 알아내야 한다.
청중의 언어를 배웠으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그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번역 능력은 그 뜻을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지 판가름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C.S. 루이스와 점심을 먹는다면. 알리스터 맥그래서 지음/최요한 옮김. 국제제자훈련원, 133,134쪽에서 발췌)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번역이라 할지라도 원문의 뜻을 완벽하게 살리기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번역은 필요하다.
번역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번역처럼 귀한 일은 없다.
외국에서는 훌륭한 번역서 한 권만 출간해도 박사학위를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책을 번역하는 것만 번역이 아니다.
자신이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상들을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풀어쓰는 것 또한 번역이다.
요즘 기독교가 세상과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온갖 비아냥과 비웃음을 받고 있다.
전혀 통하지 않는 언어로 서로 말하고 있다.
기독교도들만의 리그에서 우리끼리 웃고 떠드는 것은 기독교 정신이 아니다.
세상으로 나아가 그들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생명을 잃은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