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등반가 머머리(Albert Frederick Mummery, 1855~1895)에 의해 주창된 머머리즘(mummerism)이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 등반계는 가이드를 앞세워 잘 알려지고 쉬운 코스를 선택해서 등반하였다. 소위 등정주의(登頂主義)다. 산에 오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뜻이다. 머머리는 그러한 생각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쉬운 길보다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어려운 루트를 개발하였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그를 향하여 등산계에서는 ‘등반사의 반역아’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1931년 마터호른 산의 북벽이 정복되고, 1960년 히말라야 산맥의 8,000m급 봉우리 14개를 모두 등정하면서 등산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머머리가 주장한 등로주의(登路主義, mummerism)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여 등산하는 것이야말로 등산계의 새로운 트랜드가 되었다. 물론 그 길은 험하고 고통스러운 길이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다. 실제로 머머리는 1895년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바트 산 원정 도중에 행방불명되었다.
일본의 모험가 우에무라 나오미(Uemura Naomi, 1941~1984)도 비슷한 삶을 살았다. 그는 29살 나이에 유럽 최고봉인 몽블랑을 단독으로 등정한 이후 모험에 도전하기 시작하였다.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고,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좀 더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1968년 아마존의 원류로부터 하구까지 6,000km를 뗏목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1974년 12월부터 1년 5개월 동안 개썰매만 이용하여 북극권 12,000km를 단독으로 주파하였다. 그의 책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는 북극권 도전기를 기록한 것이다. 그의 유전자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DNA가 있는듯하다. 그 역시도 1984년 북미 최고봉인 맥킨리를 등반하고 내려오다 행방불명되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나를 따르라.”고 했다. 얼핏 들으면 등정주의 같은 말씀으로 들린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나만 따라오면 된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을 가만 돌이켜 보면 그분이 걸어가신 길은 결코 남이 걸어갔던 길을 답습하며 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길을 십자가의 길이라고 불렀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한 것은 우리보고 무조건 예수님처럼 똑같이 살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흉내 낼 만큼 실력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등정주의가 아닌 등로주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너의 길을 걸어봐라. 모세나 다윗을 흉내내려 하지 말고 너에게 주어진 길을 너답게 걸어가보라는 뜻이 아닐까? 그저 생각없이 부나비처럼 앞에서 한대로 그대로 따라하지 말고 너의 길이 비록 좁고 험하다 할지라도 과감히 나가보라는 도전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우에무라 나오미의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를 읽으면서 문뜩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의 시 ‘가지 않은 길’이 떠오른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늘 질문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다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을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