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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4. 2015

사진은 소통이다.

중세 가톨릭은 성경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그림을 사용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문맹자들이기에 그러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오늘날의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현대 미술(사진을 포함하여)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암호가 되어 버렸고, 반대로 언어는 그림을 설명하기 위한 전달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림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포기하고, 작가나 미술 전문가의 설명에 의존하여 미술을 이해하게 되었다.

왜 현대 미술이 이렇게 어렵게 되었을까?

큐레이터 박우찬 씨는 그의 책 ‘머리로 보는 그림, 가슴으로 느끼는 그림’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그렸는가(내용)?’ ‘왜 그렸는가(동기)?’를 아는 일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현대미술에는 놀랍게도 사람들이 그토록 찾고자 열망하는 그 무엇이 없다는 사실이다.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무척 애는 쓰지만, 결국 사람들이 찾아낼 수 있는 것은 혼란스럽게 흐트러진 색이나 선 또는 잘 정렬되어 있는 색, 면과 같은 순수 조형 요소들뿐이다.

사람들이 그림에서 더 이상 찾을 것이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 대화가 거기에서 끝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저 보고 느끼라고 말하는 데 보고 느낄 것이 없는 멍할 때가 너무 많은 게 사실이다.

요즘 현대 사진들이 점점 현대 미술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나름 자신의 철학과 생각을 집어넣는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현상,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사진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사진 본연의 의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대화의 단절은 미술이나 사진에서도 자꾸만 드러나고 있다.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로 자기만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소통의 시대에 불통의 예술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나는 사진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정말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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