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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11. 2015

낯설게 사진 찍기

예술의 가장 중요한 정서적 경험을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장엄함’이라고 했다.

장엄함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마어마한 자연의 풍광 앞에서, 은하수 가득한 밤하늘을 보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벅찬 느낌, 숨 막힐 정도의 감탄이 곧 장엄함이다. 

칸트는 예술에서 느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장엄함이라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예술가 자신이 감동하고 감탄해야 마땅하다. 


사진가 신미식 씨는 “내가 먼저 감동받기 전에는 절대로 셔터를 누르지 마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캐논의 초청으로 사진전을 오픈하였다. 

아프리카 사진으로 유명한 그는 놀랍게도 파리를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다. 

파리는 신 작가가 20여 년 전 처음 여행했던 곳이며, 가슴으로부터 올라오는 감동으로 셔터를 누르던 곳이었다. 

한마디로 파리는 신 작가에게 있어서 첫사랑의 고백처럼 떨리고 설레는 장소였다. 

지나간 20년 동안 사진가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원동력이 있었다면, 그것은 처음 카메라를 들고 파리를 누비며 느꼈던 그 첫사랑의 감동과 감격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감동을 잃어가고 있다. 

재미있는 것도 없고, 신나는 것도 없고, 더욱이 감동하는 것도 없다. 

첫사랑, 첫 열심을 언제 잃어버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여기서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예술 작업의 특성을 ‘낯설게 하기(Verfremdung)’라고 했다.

익숙해져 있는 삶 속에서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그런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낯설게 하기가 바로 예술이라는 것이다. 

일상의 건조함 속에서 넋을 놓고 있는 사람을 새롭게 일깨우는 작업이 바로 예술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번 신미식 사진전을 보면서 내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은 생각이 바로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였다.

신미식 작가의 사진이 주는 구도와 감성은 나에게 무척 낯설었다. 
내가 파리에 갔다면, 결코 찍지 않았을 사진을 보는 것은 충격이었다. 
파리의 화려함, 아름다운 색상을 다 빼버리고 흑백으로 담담하게 표현한 파리의 모습도 조금 낯설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미식 사진전은 나에게 잃어버렸던 첫사랑의 감동과 열정을 새롭게 깨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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