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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01. 2015

기억에 남는 선생님

한동성 선생님

한동성 선생님
명지 중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이다.
중학생 남자 아이들이 얼마나 개구장이인지 겪어본 사람은 다 안다.
선생님들의 별명을 만들어서 남몰래 부르며 낄낄거리고,
큰 보자기를 가지고와 공부하는 친구들 머리에 갑자기 씌워 인디언 밥을 했다.

그렇게 개구장이던 우리가 한동성 선생님만큼은 존경하였다.
감히 별명을 만들어 부르는 친구가 없었다.
선생님은 군대를 갓 제대하고 교사로 처음 부임하여 우리의 담임을 맡았다.
수학선생님이었지만, 방과 후 시간에 우리에게 모든 과목을 가르치셨다.
정규 수업보다 방과후 수업이 훨씬 더 엄격하였다.
그날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반평균이 다른 반들에 비해서 평균 20점 이상이 높았다.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의 저녁 식사를 사주셨다.
햄버거, 피자, 짜장면, 빵 등.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학부모들 중에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던 것 같다.
그때 그때 메뉴는 달랐지만,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공부만 한 것은 아니었다.
럭비공을 가져와서 럭비를 가르쳤는데 공을 가지고 터치다운 하는 사람을 위해서 뒤에서 어떻게 협조하고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반 대항 탁구 시합도 열었다.
전교 합창 경연대회에서는 몇달동안 연습하여 대상을 받기까지 했다.
“샤론의 꽃 예수 ~ “
4부 합창을 처음 불러본 것이 바로 그때였다.
남성합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일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2학년을 마치는 날 우리는 선생님을 위한 다과회를 열었다.
우리는 모든 선생님을 초청하였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편지와 선물을 준비하였다.
안타깝게도 담임 선생님은 우리만 가르치고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시게 되었다.
그날 스승의 은혜를 부르던 중2 남학생들은 펑펑 울었다.
어차피 3학년이 되면 선생님과 헤어질 것이긴 하지만, 학교 내에서 볼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슬프게 하였다.

중학교의 추억은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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