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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16. 2015

다윗이 정녕 미쳤는가?

2015년 7월 KBS '뉴스9’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본 망명을 타진했다는 보도로 보도책임자들이 줄줄이 보직 해임되었다. KBS 디지털뉴스국에서 작성한 ‘전쟁 통에 지도자는 망명 시도 ... 선조와 이승만’이라는 기사는 인터넷에서 삭제되고 담당국장과 부장 역시 같은 날 보직 해임됐다. (한국기자협회 인터넷 뉴스에서) 

구약 성경에 보면 이와 비슷한 사건이 하나 있다.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다윗이 장인인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쫓기는 신세가 되자 아주 발칙한 생각을 하였다. 적국인 블레셋에 망명하면, 어느 정도 생활과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블레셋에 빈손으로 가지 않았다. 하나님의 성소에 하던 ‘골리앗의 칼’을 가져갈 생각을 하였다. 


그 당시 풍습은 전쟁에 승리한 전리품을 신전에 보관하였다. 자신들에게 승리를 허락한 신에게 감사의 예물로, 승리의 징표로 보관하였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법궤를 빼앗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 신전에 법궤를 보관하였다. 이스라엘도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얻은 ‘골리앗의 칼’을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놉(Nob)에 보관하고 있었다. 다윗은 제사장을 속이고 골리앗의 칼을 얻은 후 곧바로 블레셋에 망명신청을 하였다. 


그가 의기양양하게 블레셋 땅을 밟았을 때 상황은 그의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다윗은 블레셋과 수차례 전쟁에서 언제나 승리를 거둔 장군이다.  그리고 블레셋에서 가장 유명한 골리앗의 목을 벤 다윗이었다. 블레셋은 자기 집안에 굴러 들어온 원수 다윗에게 상급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울 왕의 칼을 피해 살려고 도망친 다윗은 오히려 죽을 곳에 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잔꾀를 부렸다. 미친 척하면서 대문짝을 끄적거리며, 수염에 침을 질질 흘렸다. 그리하여 겨우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사람이 위기에 빠지면, 누구나 제 살길을 찾는 법이다. 그러나 지도자는 혼자 몸이 아니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백성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명나라에 망명을 신청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명나라 황제는 선조의 망명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조는 크게 실망하면서 “사대의 예를 그토록 다했건만 명나라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 한탄하였다. 그는 전쟁을 피해 자기 한 몸 살 궁리만 하였다. 조선 역사상 최초로 정부를 둘로 나누어 세자인 광해군에게 전쟁을 지휘하도록 하고 자기는 어찌해서든 살려고 몸부림쳤다. 훗날 선조는 의주까지 도망친 것은 명나라 참전을 유도한 것이고, 따라서 조선을 구한 건 바로 자신이라고 해괴망측한 주장을 하였다. 

1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명예로운 칭호인 프랑스의 원수(Maréchal de France, 별7개)가 된 필리프 페텡(1856~1951)이 있다. 그는 비시정부의 수반으로 독일의 앞잡이가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후 그는 재판 석상에서 이렇게 변명하였다. 

“여러분... 저는 1940년 7월에 프랑스 국민의 대표에게서 권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중략) 저는 이 권력을 프랑스 국민을 보호하는 데 썼습니다. (중략) 적의 강요 앞에서 국익을 지키기 위해, 저는 갖은 애를 써야만 했습니다. 역사는 제가 여러분을 지키고자 얼마나 애썼는지 밝혀줄 것입니다."

그렇지만 법정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가 고령인 점을 참작하여 집행유예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일드외라는 섬으로 유배되어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나라를 등진 사람의 변명을 프랑스는 들어주지 않았다. 

필리프 페텡

정조가 죽고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청나라를 통하여 들어온 천주교는 당시 성리학의 지배체제에 중대한 도전이 되었다. 유교 경전의 자구 해석 하나 가지고 목숨 걸고 싸웠던 조선 지배체제는 천주교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무자비한 숙청이 시작되었다. 그때 천주교의 유일한 신부인 주문모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청나라로 도망가려고 하였다. 그가 압록강에 당도해서 국경을 넘으려 할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네가 핍박받는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려느냐. 너는 목자이니 목자의 자리로 돌아가라."

1801년 4월 24일 주문모는 제 발로 의금부에 나타나 소리쳤다. 

“내가 당신들이 찾는 천주교 신부다."

자신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과감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주문모 (1752~1801)

독일의 본회퍼 목사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히틀러가 극성을 떨 때 미국 친구의 도움으로 유니언 신학교에 가게 된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유니언 신학교의 학장인 코핀 박사의 집 정원에 앉아서 나의 상황과 민족의 상황을 생각하고 기도할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그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분명해졌다. 미국에 온 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우리 민족이 수난당하고 있는 이때 나는 독일의 그리스도인들과 운명을 함께해야 한다. 만일 이때에 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난 후 나는 독일의 재건에 참여할 권리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다시 독일로 돌아가 히틀러에게 저항하며 암살을 모의하다가 잡혀 교수형을 당하였다. 


이스라엘의 성군이라 하는 다윗 왕의 망명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성경에서는 그의 잘못을 가감 없이 그대로 기록하면서 그를 위하여 단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있다. 왜 그의 수치스러운 면을 그대로 다 기록하고 있을까? 제발 그러한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역사는 반복한다. 자기 한 몸 살기 위하여 비겁한 선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돌아설 것인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바른 선택을 할 것인지?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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