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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21. 2015

세가지 우정

연암 박지원과 유한준, 맬서스와 리카도, 다윗과 요나단

1. 좋은 관계로 시작했지만, 원수가 된 관계 - 박지원과 유한준


"저물녘 용수산에 올라

그대를 찾았으나 오지 않았더군요.

강물이 동쪽에서 흘러오더니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습디다.

밤 깊어 달빛과 함께 돌아왔는데,

정자 아래 늙은 나무가 허옇게 마치 사람이 서 있는 듯하기에,

난 또 그대가 먼저 와 그 사이에 서 있는가 했다오."

사진은 한국경제에서 가져옴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친구 유한준(1732~1811)에게 보낸 엽서다. 친구가 올 줄 알고 용수산까지 마중 나갔지만 친구는 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정자 아래 늙은 나무가 친구인 줄 알고 반갑게 다가갔는데 아니었다. 친구를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이 너무나 잘 표현하였다.

창애 유한준(규장각 소장)

연암의 친구 유한준은 박지원과 쌍벽을 이루는 문장가로 집안끼리도 인연이 있었다. 사돈 간인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5살이 나긴 하지만, 함께 글공부를 하며 우정을 나누는 절친한 친구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에 대하여 평가해주며 글솜씨를 키워나갔다. 그런데 직선적인 박지원이 유한준의 글이 너무 기교에 치우쳤다고 비평하는 데서 갈등이 생겨났다. 한두 번은 참았으나 여러 차례 반복하여 평가절하하는 소리에 유한준은 마침내 크게 삐져 갈라서게 되었다. 그후 유한준은 연암의 열하일기가 청나라 연호를 사용했다고 비평하였으며, 나중에는 선친의 묘소 문제로 둘 사이는 완전 원수가 되었다.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는 유한준을 가리켜 백 세 동안 이어질 집안의 원수라고 하였다.


사실 박지원은 친구 관계를 잘 맺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저잣거리에 있는 평민들이나, 서자들이나, 중국 여행 중에 만나는 중국인들이나 누구를 만나든 쉽게 우정을 맺는 사람이었다. 때로 필요때문에, 때로는 정말 마음에 맞아서 친구가 되었지만, 유한준만큼은 풀지 못한 숙제가 되었다. 


2. 서로 의견이 달랐지만, 평생 좋은 친구가 된 맬서스와 리카도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혼란한 와중에 나폴레옹은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되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정복하여 명실상부 황제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에 패배한 이후, 영국에 타격을 주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농업보다는 상공업에 치중하며 무역으로 먹고살던 영국으로서는 치명적이었다. 그러자 영국의 곡물 값은 오르고, 땅값도 오르게 되었다. 영국의 지주들은 졸지에 떼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모스크바 원정에서 패배하면서 대륙봉쇄령은 자연스럽게 소멸하였다.


그러자 땅 값이 떨어지고 지주들의 수입이 줄어들게 되었다. 반면에 공장을 운영하던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여기서 지주와 자본가의 갈등이 발생하였다. 이때 지주들을 대변하여 경제 원리를 펼쳐나가던 맬서스와 자본가들의 입장을 대변하던 리카도는 치열한 논쟁을 하였다.


사실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는 교양 있는 영국 가문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온 사제였다. 반면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는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정식 학교 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는 14살부터 아버지가 하던 주식 중매 업무에 뛰어들었는데, 탁월한 경제감각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이렇게 둘은 태생적으로 지주와 자본가의 견해를 대변할 수 밖에 없는 앙숙이었다.

둘은 출판물로서 심하게 설전을 벌이다 리카도가 맬서스에게 편지하였다.

“비록 우리 둘의 의견이 다르다 할지라도 같은 방향으로 다른 것이 확실한 이상, 출판을 통해 논쟁을 지속할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만나 정답게 토론을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토드 부크홀츠 지음 / 이승환 옮김 / 김영사 / 100쪽) 그때부터 둘 사이에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이 달라 상대방에 대하여 끊임없는 비평을 하면서도 마음에 상처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이론을 완성해 나갔다. 끝내 의견 일치를 보지는 못했지만, 둘은 평생 친구가 되었다. 엄청난 갑부였던 리카도는 자기 유산 상속인으로 세 명을 두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맬서스였다. 맬서스는 리카도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내 가족을 제외하고 일생을 통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인간은 없었다.”(위의 책/100쪽)


3. 신분이 달랐지만, 평생 마음과 뜻이 통했던 다윗과 요나단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도 빠트릴 수 없다. 요나단은 사울 왕의 장자로서 왕위 계승권 1순위였다.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촉망받는 차세대 지도자였다. 반면에 다윗은 8형제 중 막내로 집안에서도 천덕꾸러기였다. 생명을 내걸고 광야에서 양을 치는 일은 대개 고용된 목자들이 하는 일이었는데 다윗은 그런 삯군 목자 취급을 받았다. 아버지는 다윗을 아들로 대우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는 조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David and Jonathan(Cima da Conegliano)

불가에서는 세속의 이해관계를 떠나 영생의 진리를 함께 추구하는 친구를 도반(道伴)이라고 하는데 다윗과 요나단이 그러하였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을 계기로 둘은 신앙이라는 끈으로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은 생명을 나눌 정도로 우정이 깊어졌다. 실제로 요나단은 자기 가족을 다윗에게 다 의탁하고 자신은 전쟁터에 나가서 장렬하게 전사한다. 다윗은 그러한 요나단의 마음을 헤아려 일생 그의 자손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고 우정을 쌓아간다. 그동안 스쳐 지나갔던 친구들을 떠올리면, 아쉬움도 있고, 기쁨도 있다. 젊었을 때 우정을 나누며 같은 꿈을 꾸었는데, 크게 성공한 친구는 나를 마치 처음 보는 사람 대할 때 정말 가슴이 아팠다. 중학교 때부터 만나 지금까지 변함없는 친구도 있다. 십수 년 만에 만나도 언제든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친구가 언제나 든든하다. 그래도 함께 뜻을 같이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영혼의 동반자(도반 道伴)가 최고의 친구인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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