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 성공하는 리더와 망하는 리더의 모습을 한 곳에서 보여준다. (사무엘상22장)
1. 망하는 길 -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는 리더
사울 왕은 자기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가 없다." 사울은 자기 반대편이라고 생각하는 다윗을 고발하는 자가 없다고 신하들에게 하소연했다. 그러나 사실 다윗은 그의 반대편이 아니다. 그는 사울의 사위이고, 사울을 대신하여 목숨 걸고 나가 블레셋과 싸우는 장군이고,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건진 충성스러운 신하다. 그러나 질투심에 사로잡힌 사울은 고개를 모로 꼬고 다윗을 보았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시각으로 다윗을 보고 고발하는 사람이 없다고 탄식하였다. 지도자가 편향된 시각을 가지면 그 결과는 망하는 것뿐이다. 누구도 그에게 객관적 사실을 충성스럽게 말할 자가 없다.
실제로 그의 큰아들 요나단이 다윗에 대하여 객관적 평가를 하고 충언했을 때 사울은 아들 요나단을 죽이려고 창을 던졌다. 아마도 사울의 주특기는 창 던지기였던 모양이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인 아히멜렉이 왕에게 충언했을 때 사울은 그의 가족을 다 몰살시켰다.
무조건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조폭 두목이나 하는 짓이다. 모두 어깨까지 구부리며 크게 고개 숙이지만, 그건 진정한 승복이 아니다.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 두목의 등 뒤에서 칼을 찌를 수 있다. 진정한 충신과 충언을 구한다면, 판단력을 잃은 개인 감정으로 부하들에게 창 던지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도자의 편향된 시각에 모두 동조하라는 것은 마치 북한의 김일성 체제가 박수로 만장일치를 유도하는 것과 같다. 조금만 태도가 틀려도, 조금만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아도 바로 숙청해 버린다면, 거기서 어떻게 바른 충언이 나올 수 있겠는가? 리더 자신이 고개를 모로 꼬고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 게다가 창까지 쓴다면, 결코 충언이 자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신하들이 자기감정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였다. 자기를 위하여 슬퍼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왕은 위로를 받기보다는 위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왕의 감정 코드까지 살펴야 한다면 신하들은 정말 피곤해진다. 이럴 때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간신배 무리다.
2. 망하는 길 - 왜곡된 정보에 속는 리더
사울 왕 곁에는 간신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다. 충성스럽게 직언하면, 죽이는데 누가 직언을 할 것인가?
조선 시대 언론을 담당하던 사간원이란 부서가 있다. 사간원은 목숨을 내걸고 왕에게 직언해야 하는 자리이기에 인품이 강직한 사람 가운데 선발하였다. 조선이 500년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이 많지만, 그중에 사간원의 역할이 분명 있었다. 사울 곁에는 사간원은 없고 간신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에돔 사람 도엑이다. 그는 대제사장 아히멜렉과 다윗 사이에 있었던 일을 사울에게 고하는데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 사실을 호도하였다.
언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는 오보는 결론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지도자는 누가 주는 정보이든 무조건 동의하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여야 하고, 그때 비로소 자기에게 정보를 준 정보원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정보원의 거짓 정보에 현혹되기 시작하면, 결국 그의 속임수에 놀아나는 꼴이 되고 만다. 지도자가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면, 부하들이 함부로 허위사실을 유포할 수 없으며 자신의 지도자를 두려워할 줄 알게 된다.
사울은 거짓 정보에 발끈하여 무시무시한 결론을 내린다. 그는 아히멜렉 집안과 제사장들이 자기를 모반했다고 어리석은 추측을 한다. 거짓 정보 때문이다. 그 결과 아히멜렉 집안과 제사장 85명을 처단하라고 명령한다. 신정국가에서 제사장을 몰살하는 일은 천인공노할 일이다. 아무리 사울 왕이 무서운 폭군이라 할지라도 그의 신하들은 그 일에 찬성할 수 없었다. 아무도 칼을 들어 제사장들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그때 에돔 사람 도엑이 85명을 처단하는 일을 기꺼이 맡았다. 그가 사실을 왜곡한 것은 바로 살인을 원하였기 때문에 충동적인 사울을 움직인 것이다.
결국 왕 사울은 간신 도엑의 손에 놀아난 꼴이 되었다. 성마른 사울은 리더로서 자격을 잃고 간신배의 수하처럼 행동한 것이다. 자리가 왕이지, 권세가 자기에게 있는 것 같지만, 사울의 귀에 속닥속닥 하는 도엑의 하수인일 뿐이다.
3. 성공하는 길 -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리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아둘람 굴에 숨었을 때 사람들이 그의 곁에 모여들었다. 환난을 겪은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다. 다윗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음이 틀림없다. 혹시나 사울의 첩자가 숨어들 수 있었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다 들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사울 왕의 사위로서,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으로서, 민족의 영웅으로서 대접받을 때 들을 수 없는 밑바닥의 소리였다. 리더가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백성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성군이 될 자질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백성의 신음 소리를 듣는 왕과 그렇지 못한 왕의 길은 명백하게 다르다. 조선 시대 신문고의 뒤를 이어 왕에게 일반백성이 직접 하소연 하는 격쟁이란 제도를 둔 이유가 있다.백성의 아픔을 들으면서 다윗은 백성을 위하여 정치하리라 다짐하였을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의 성군이 된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4. 성공하는 길 - 충신을 곁에 두는 리더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사무엘 선지자는 그 후 다윗에게 특별한 조언을 하지 않고 그의 곁을 떠났다. 그를 바르게 지도하는 자가 없을 때 그는 블레셋으로, 모압으로 망명을 시도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곁에 선견자 갓과 나단이 함께 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마치 유비의 곁에는 제갈공명과 방통이 있었던 것과 같다. 두 선견자는 다윗에게 길을 제시하였다. 때로 잘못했을 때는 신랄하게 다윗을 비판하였다. 다윗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 성공하는 리더가 될 수 있었다. 다윗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선견자 나단과 갓이 좌우에서 그를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왕을 위하여 생명을 내걸고 따르는 나단과 갓 선지자는 정말 모범적인 리더와 참모의 관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