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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17. 2015

알렉산더 헨더슨 - 배신자에서 민족의 지도자로 서기까지

교인들은 담임목사의 위임예식을 방해하기 위하여 정문을 봉쇄하였다. 
담임목사는 알렉산더 핸더슨(Alexander Henderson,1583-1646)으로 성 앤드류스 대학의 촉망받는 젊은 교수였다. 
남달리 자부심이 강했던 핸더슨은 자신을 거부하는 교구민들을 바라보면서 충격에 사로잡혔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지역적 감정이 있었다. 

장로교제도를 지향하는 스코틀랜드와 왕을 교회의 수장으로 따르는 잉글랜드는 항상 종교적 충돌이 있었다. 

신앙은 지역감정과 묘하게 얽혀서 더 이상 풀래야 풀 수 없는 실타래와 같았다. 

아무리 유능하고 실력 있는 목회자라 할지라도 잉글랜드의 감독에 의해 임명된 목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스코틀랜드의 회중들은 단호하였다.   


결국, 순서를 맡은 일행은 창문을 통해 간신히 교회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항의하는 아우성 속에서 졸속으로 위임예식은 진행되었다. 

순서를 맡은 교회 고위층들은 다 떠나고, 홀로 남겨진 핸더슨은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자신을 배척하는 성도들과 정상적인 목회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스코틀랜드 명문가 집안에서 훌륭하게 성장한 핸더슨으로서는 처음 부딪히는 어려움이었다.   


조용히 학문만 하면 되었던 상아탑과는 달리 목회 현장은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다. 

그는 성경만 보던 눈에서 민족과 시대 상황을 바라 보며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 스코틀랜드의 영적 지도자인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가 근처에서 집회한다는 소식에, 변장하고 그 집회에 참석하게 된다. 

마치 예수님을 만나 뵙고 싶었던 삭개오가 뽕나무 위에 올라간 것과 같은 형국이다.   


브루스 목사는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요10:1)라는 말씀을 본문으로 불같은 메시지를 전하였다. 

핸더슨은 교인들이 거부하는 교회에 도적처럼 창문으로 들어가서 목사입네 하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씀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말씀 앞에 그는 무너졌다. 

그는 완전히 방향을 전환하였다. 


잉글랜드 감독교회의 종으로 살기보다는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종으로 죽기를 소망하였다. 

더 이상 억압하는 잉글랜드의 노예가 되기 싫었다. 
그는 탁월한 학식과 재능과 달변과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1618년 잉글랜드의 강압적인 퍼스 총회에서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민족 지도자로 선봉에 서서 열심히 뛰었다. 
1638년 11월 에딘버러 그레이프라이어 교회 뜰에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핸더슨 목사의 지도하에 그가 초안한 국가 언약에 사람들은 서명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더 이상 잉글랜드의 강압적인 감독제도를 따를 수 없음을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며 언약을 맺은 것이다. 
그리고 명예혁명(1688)이 일어나는 50여년간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 스코틀랜드의 민족 정신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싸움이 진행되었다.   


결국 바른 지도자는 성경에 탁월할 뿐만 아니라 시대를 바로  보는 지혜와 식견이 요구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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