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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28. 2015

가늘고 길게 살까? 굵고 짧게 살까?

기드온 이야기 2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불러주었던 여호와의 사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이런 화법은 자칫하면 오해하기 쉽다. 기드온은 ‘너의 힘으로’라는 말을 오해하여 이렇게 대답하였다.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기드온은 ‘너의 힘으로’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무슨 힘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그 말을 인간적인 힘으로 생각했다. 우리도 쉽게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제일 뒤에 있는 말에 강조점을 두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이것은 명백하게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용사로 부르시고 그에게 힘을 주시고 그를 보내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무런 힘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키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부르신다면, 그건 그에게 어떤 능력을 주신다는 뜻이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하나님까지 나서야 할 이유는 없다. 


1. 가늘고 길게 살기  


심리학자 에이브러험 매슬로(Abraham H. Maslow, 1908~1970)는 ‘요나 콤플렉스’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요나는 중대한 사명을 거부하고 도망치려 하였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원수의 나라인 앗수르의 수도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을 때 그는 도망쳤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맡겨진 사명을 회피하려고 하였다. 요나 콤플렉스는 ‘위대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는 자신의 진정한 운명이나 사명을 피하려는 인간의 성향을 뜻한다. 매슬로는 사람이 자신의 단점만큼이나 장점을 두려워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생의 사명을 이루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저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데 만족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많은 사람은 굵고 짧게 사는 것보다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남들 앞에 나서서 일하기보다 뒤에 서서 적당히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어떻게 해서든 피해 보려고 했던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받았을 때 온갖 핑계를 동원하여 그 사명을 맡지 않으려고 하였다. 기드온도 요나 콤플렉스를 보인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구구절절이 말하였다.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연극을 한다면 이 대사를 겸손한 자세로 읽기보다 비굴한 모습으로 읽어야 훨씬 맛깔스럽게 된다. 


사실 그의 집은 약하지 않다. 그의 집은 그가 사는 동네 오브라 전체를 소유할 만큼 부자며 유력자다. 그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접하기 위하여 가져오는 음식의 양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부자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날마다 미디안 족속이 노략질하는 상황에서 일반 백성은 끼니도 때울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염소 새끼 한 마리와 가루 한 에바(22킬로)로 만든 떡(무교병)을 가져왔는데, 이것은 한 사람이 먹기에 너무 많은 양이다. 그러므로 그가 자기 집이 약하고 자기는 작은 자라고 한 말은 사명을 회피하려는 수작일 뿐이다. 한 마디로 “저 좀 빼주세요.” 하는 것이다. 

“가늘고 길게 살래요."  

그는 결코 앞장서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적당히 살고 싶었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자라는 말을 신조처럼 여기며 사는 인물이 바로 기드온이었다. 


2. 굵고 짧게 살기  


1337년 프랑스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영국과 프랑스 간에 백년 전쟁이 일어났다. 프랑스 영토 안에서 일어난 이 전쟁으로 프랑스 국민은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보았다. 그즈음 13살 소녀 잔다르크(Jeanne d'Arc, 1412~1431)가 들판에 혼자 있을 때, 성 미카엘과 성녀 가타리나 그리고 성녀 마르가리타가 그녀 앞에 나타나 영국군을 몰아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다른 사람이 뭐라 비평하든, 잔 다르크는 이것을 하나님과의 만남이라고 확신하였다. 그 만남을 계기로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변화하였다. 전쟁터에 뛰어든 소녀 잔다르크는 프랑스 군인들에게 희망의 깃발이 되었다. 전쟁에 참여한 것은 불과 3년밖에 안되지만, 그녀는 지금도 구국의 소녀로 프랑스인들에게 남아있다. 

잔 다르크와 기드온을 일대일로 비교하여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기드온은  자신을 찾아온 분이 하나님의 사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징표를 보여달라고 하였다.  그때 여호와의 천사가 손에 든 지팡이 끝을 (기드온이 준비한) 고기와 빵에 갖다 대자 바위에서 불이 나와 그 고기와 빵을 태워 버렸다. 그리고서 천사는 간데온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기드온은 그때야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뵈었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것은 곧 신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죄된 인간인 줄 잘 알고 있기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하나님은 그를 안심시켜준다. 그리고 앞서 여러 차례 말한 것처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준다. 


이제 기드온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길을 걸어가게 된다. 그것이 만남이 주는 신비한 모험 여행이기도 한다. 그것은 가늘고 길게 사는 삶이 아니라 굵고 짧게 사는 삶이기도 하다. 물론 기드온은 요나 만큼이나 머뭇거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일 나에게 이런 만남이 있다면 정말 이 신비로운 모험 여행을 할 것인가?

아니면 가늘고 길게 살기를 원할까?


기드온 이야기

3. 가늘고 길게 살까? 굵고 짧게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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