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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31. 2015

요리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

십여년 전 중국 천진에 들렸을 때, 공산당에서 마련한 식사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공산당에서 공식적으로 외빈을 접대하는 영빈관 1층 식당에서였다. 

호텔 시설보다 낡긴 했지만, 그래도 손님 접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둥그런 식탁에 6명씩 둘러앉았는데 중국 특유의 시끄러움으로 가득하였다. 

원탁마다 커다란 쟁반에 갖가지 요리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끝이 없었다. 

우리 같으면 먼저 먹은 요리는 치우고 그다음 요리를 내올텐데 다 먹지도 않은 요리 접시 위에 다음 요리를 쌓아 올렸다.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음식을 준비했는지 보여주기 위함인지. 

나는 원래 음식 먹는 속도가 빠른 데다 요리가 얼마나 계속되는지 몰랐기에 3접시째 이미 배가 불러 더는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7접시 8접시 상위에 음식이 계속 쌓이는 것을 보니 그만 기가 턱 질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먹는 흉내를 조금 내었지만, 나중에는 그것도 아예 포기해버렸다. 

옆에 있는 중국 공산당원은 뭐가 기분이 좋은지 일어서서 연신 건배를 외치며 더 먹으라고 강권하였다. 

나는 그냥 주저앉아 눈만 끔뻑끔뻑 음식 구경하며 감탄하는 척하였다. 

굶어 죽은 귀신이 붙었나 연신 어구적 먹어대는 저들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새비지 랜도어(Henry Savage Landor 1865-1924)

조선 시대 말 고종 황제의 어진을 그린 최초의 서양화가 새비지 랜도어(Henry Savage Landor 1865-1924)가 있다. 

그는 구한말 조선을 방문하여 왕으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을 그렸다. 

그가 보고 느낀 것을 그림과 함께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Corea : Land of Morning Calm, 1895)’ 이란 책을 엮어냈다. 

한 번은 세도가의 집을 방문하여 초상화를 그려준 적이 있는데 그날 그는 악몽 같은 경험을 하였다. 

무려 다섯 시간에 걸쳐 점심식사를 하였던 것이다. 

그는 너무 배가 불러 걸어오면서 음식이 넘어오려고 하여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어기적어기적 걸었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음식을 사양하면, 자기의 정성을 거절하는 처사라고 낯빛을 붉히고 화를 내기에 어쩔 수 없이 죽을 힘을 다해 먹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폭식은 부유층이나 가난한 서민이나 만연된 풍습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부유층의 폭식은 허례허식 이었고, 가난한 백성의 폭식은 다가올 굶주림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당시 한국인 상당수는 만성적인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였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 잔칫집 뒤편에 폭식하여 견디지 못하는 어린 아들이 담장을 부여잡고 토하면, 등을 두들겨 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1896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여하였던 사절단 일행이 있었다. 

궁내부 특진관 민영환(1861-1905)이 특명전권 공사였고 그의 수행 비서로 김득련과 당시 학부협판이었던 윤치호(1865-1945)와 러시아 공사관의 서기인 스테인 등 여러 명이었다. 

윤치호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겼는데 그중에 먹는 것과 관련된 기록이 하나 있다. 

'민영환의 개인 비서인 김득련(1852~?)은 뚱뚱한 사내다. 그는 심하게 술을 마셨기 때문에, 스타인이 그에게 “Mr. Fish”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것은 물고기처럼 술을 마신다는 뜻이었다. 식탁에서 김득련을 보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못한 일이다. 그는 말처럼 시끄럽게 소리 내고, 물고기처럼 술을 마시며, 마치 돼지처럼 먹는다."

당시 양반들이 먹는 모습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기록한 것은 없다.

1896년 5월에 모스크바에서 촬영, 앞줄 왼쪽부터 김득련, 윤치호, 민영환, 블란손(외부관), 파스코프(동행무관)이고 뒷줄 왼쪽부터 김도일, 스테인, 손희영이다.
니콜라이 2세의 약혼 사진

가난한 시절 먹는 것에 관하여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먹을 수 있을 때 실컷 먹어두자."

“허리띠 푸르고 목구멍의 때가 벗겨지도록 먹어라!"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하고 오늘은 실컷 먹어라!"


난 어릴 때 내가 먹는 밥에 물을 부어주는 어른이 제일 싫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먹는 것에 큰 욕심이 없는 나는 어른들로부터 ‘입이 짧다’고 핀잔을 많이 들었다. 

먹는 것에 절제하고 조심하려고 애를 써도 이제는 아랫배가 점점 나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제발 나 보고 더 먹으란 말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제도 추어탕 먹는데 튀김이 조금 남았다고 나 보고 남은 거 싸 줄테니 가져 가라고 하는데 그만 기가 질려버렸다. 

이 나이에 사내가 음식을 싸들고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도 아무런 생각없이 천연덕스럽게 음식 싸가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조선시대를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숟가락 더 먹고 살 빼는 거 힘들뿐만 아니라 음식값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요. 

이제 제발 살만하니 적당히 먹으며 삽시다. 

요즘 텔레비전에 요리 프로그램이 대세인데, 재미있긴 하지만,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너무 자극하는 프로그램이라 별로 유익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금도 점심때 먹은 짜장면이 소화되지 않아 배를 두드리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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