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처드 3세는 키가 162cm밖에 되지 않지만, 용감무쌍하고 전투 경험이 많은 노련한 전사였다.
그는 붉은빛이 도는 금발을 가진 영국의 왕이었다.
리처드 가문은 지난 3백 년간 이어온 명문집안이었다.
그의 선조 중에는 정복왕 윌리엄 1세(William the Conqueror)도 있었다.
그가 입은 갑옷은 실크로 만들어진 튜닉이 덮여 있었고, 플랜태저넷(Plantagenet)가문의 화려한 문장으로 장식하였다.
투구 위에는 가벼운 왕관이 있었으며 그가 타고 있는 말은 멋들어진 백마였다.
그의 군대는 만이천 명의 정예군인이었다.
반면 왕이 되겠다고 반역도들을 이끄는 헨리 튜더는 마을 광장에서 머리가 잘린 웨일스 평민의 손자였다.
지금도 잉글랜드인들은 웨일스 사람들을 촌놈으로 무시하지만, 당시에는 더 심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리치먼드 백작(Earl of Richmond)이라 칭하면서 오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보즈워스 평원에 섰다.
여러모로 전쟁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집안싸움의 와중에 가족들을 살해한 리처드 3세는 지지세력이 매우 약해졌다.
더욱이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스탠리 가문이 중간에서 전쟁의 승패가 어느 쪽으로 기우는가 관망하고 있었다.
여기서 리처드 3세는 결정적 판단착오를 한다.
그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백여 명의 정예병을 거느리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헨리 튜더를 죽일 작정이었다.
용감하게 뛰어드는 리처드 3세의 기세는 대단했다.
창과 검을 마구 휘두르며 군사들을 쓰러뜨리고 헨리 튜더 쪽으로 접근하는데 전투 경험이 없던 헨리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는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강인하고 용감한 노병인 숙부 재스퍼(Jasper)가 그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었다.
그는 헨리를 경호하며 진정시켰다.
"흔들리지 말고 굳건히 버티고 서 있으라!"
헨리는 그의 말을 따랐고 다행히도 헨리의 군대는 리처드의 공세를 잘 막아내고 있었다.
중도적 입장을 보이던 스탠리 가문은 결정적 순간에 뛰어들어 리처드를 죽이는 데 앞장섰다.
역사의 승패는 그렇게 갈라졌다.
왕권은 요크 가에서 튜더 가로 옮겨졌다.
2. 1963년 흑인 인권 운동을 하던 마틴 루서 킹이 버밍햄에 왔을 때 그의 운동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10년 동안 인권 운동을 하였지만 진전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운동의 동력도 서서히 약화되었다.
더군다나 버밍햄은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도시였다.
인권운동가들이 탄 버스를 KKK 단이 강제로 길가에 세우고 불을 질러도 경찰들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흑인들에 대한 테러가 자행되는 버밍햄을 인권운동가들은 Bomingham(폭탄 bomb와 Birmingham을 합성한 말)이라 불렀다.
한번은 킹 목사가 버밍햄에서 연설할 때 90kg 덩치의 백인 남자가 무대로 뛰어들어 킹을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보좌관들이 킹을 보호하기 위하여 달려들었다.
그때 킹 목사는 자신을 때리던 백인 남자가 몰매를 맞을 것을 우려하여 그를 감싸 안았다.
청중들은 민권운동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킹 목사는 백인 남자를 붙잡고 말하였다.
당신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는 자기 비하에 불과하며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임을 알기에 두려워하여 그러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킹은 마치 깜짝 게스트인 것처럼 그 남자를 청중들에게 소개했다.
24살의 뉴욕 토박이였던 로이 제임스는 킹의 너그러운 포용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버밍험의 인권운동은 어린 학생들까지 참여하였다.
6백 명의 어린 학생들이 체포 구금되었다.
8 명을 수용하는 감방에 80여 명의 아이들을 수용하였다.
더는 수용할 공간도 없었다.
경찰은 물대포를 동원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사나운 독일산 셰퍼드 100마리를 풀어 놓았다.
그때 AP통신의 사진작가인 빌 허드슨(Bill Hudson)은 민권 역사에 길이 남을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 딕 미들턴(Dick Middleton)이 개에게 물리는 순간을 포착하였다.
소년은 성자와 같이 차분한 자세로 마치 “물을 테면 물으라!”는 식으로 자신의 몸을 사나운 경찰견에게 맡기었다.
그 장면의 숨은 사연이 어떤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사진 한 장이 가지는 위력은 대단하였다.
다음 날 ‘뉴욕 타임스’ 토요일판 첫 페이지 상단에 사진이 실렸고, 케네디 대통령을 포함하는 모든 사람이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민권 운동의 반전은 작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경찰견의 위협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순순히 자신의 몸을 맡기는 듯한 모습은 무저항 시민운동을 주도하던 마틴 루서 킹의 사상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3. 요즘 주변에서 살기 힘들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정말 견디기 힘들다는 말들도 한다.
일반적으로 선량한 사람들이 싸움에 쉽게 지치는 경향을 보인다.
관계의 어려움을 느끼고, 긴장과 갈등의 국면에 피로감은 누적되고 마침내 스스로 지쳐 물러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예수님은 말한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24:13)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진실로 바르고 정직하다면 견뎌야 할 것이다.
이집트의 군대가 잡아 죽일 듯이 덤벼들 때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 14:13)
승리의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온갖 모략과 술수, 위협과 폭력, 험담과 조롱 앞에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견디어 내는 것만으로도 이길 수 있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에게, 진리에 있음을 믿는 자가 결국 승리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