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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n 24. 2016

자부심은 다 어디가고

1. 양반의 자긍심과 자부심


조선은 원대한 이상을 품고 세운 나라였다.

귀족 중심의 사회에서 과거 제도를 통하여 인재를 등용하는 열린 시스템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평가하여 관료를 뽑는 과거 제도는 중세 사회에서 가장 공정한 인재 등용 방법이었다.

천민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과거시험을 보고 관료가 될 수 있었다.

과거에는 문과, 무과, 잡과가 있다.

문과는 학문을, 무과는 무예를, 잡과는 통역이나 의술이나 기술 관료를 뽑는 시험이다.

잡과는 중인들만 응시하므로 보통 과거라 하지 않지만, 그래도 평민 중에 나름 자기 재능을 발휘하여 관료가 될 수 있는 길이다.

평민 중에 특별한 재주도 없고 공부도 못하지만, 무예에 출중하면 무과를 보고 관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과거 시험 중 문과가 가장 중요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 좌측에 문반을 뜻하는 정1품 돌비석에서 정9품까지 줄지어 서 있고, 우측에 무반을 뜻하는 종1품에서 종9품까지의 돌비석이 있다.

이 두 반열을 통칭하여 양반이라고 한다.

조선 초기 양반 관료들은 굉장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졌다.

그들은 공정한 과거 제도를 통하여 자신의 실력을 입증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바로 다스리려고 노력하였다.


2. 양반의 자존심


그러던 것이 점차 양반 관료를 향한 등용문이었던 과거 제도가 부패하기 시작하였다.

관료 생활을 하면서 축적한 부와 명예를 세습하기 위하여 갖가지 꼼수들이 등장하였다.

지방 사람이나 평민들이 과거 시험을 보아도 이미 든든한 배경을 가진 양반 관료의 자제들에게 밀리기 일쑤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과거 시험장에서 온갖 부정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예상 답안지를 미리 써오는 것, 시험지를 바꿔치기하는 것, 채점자와 짜고 후한 점수를 주는 것, 합격자의 이름을 바꿔치는 것 등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짓들을 하였다.

결국, 순진하게 시골에서 공부만 하던 사람들은 번번이 낙방하게 되고 양반되는 길은 막히고 말았다.

양반이란 의미도 변질하였다.

전에는 과거 시험을 통하여 관료가 된 사람만 양반이라 하였는데, 이제는 관료의 가족들까지 양반이라 하였다.


다산 정약용의 제자 중 이학래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총명하여 다산 정약용의 저술 작업에 큰 도움을 주었다.

비록 서얼 출신이었지만, 그는 과거 시험으로 양반이 되고자 하였다.  

당대 최고의 학문을 자랑하는 그였지만 배경이 없던 그는 70세 될 때까지 과거를 계속하여 보았고 그때마다 번번이 낙방하였다.

마침내 70세때 마지막으로 과거 시험을 본 후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양반으로 나아갈 길을 막고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질렀던 양반에게 자긍심이나 자부심은 없었다.

오직 알량한 양반의 자존심만 남았다.


3. 야! 이 양반아!


그러다 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나라의 국고는 바닥이 났다.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조선은 백성들에게 돈을 받고 양반을 팔기 시작하였다.

덩달아 몰락한 양반도 자기 집안의 족보를 사람들에게 팔았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에는 양반이 상것에게 양반을 팔아먹고 작성한 매매문서가 실려 있다.

양반이 갖추어야 할 몸가짐의 세칙이 열거된 문서를 받아든 상것은 불만을 터뜨린다.

양반이 좋은 것이라더니, 이렇게 몸을 단속하고 살아야 한다면, 양반 좋은 것이 뭐냐는 것이다.

이에 양반이 다시 문서를 써주었다.

양반이 누리는 온갖 특권과 특혜를 나열하였다.

“이웃집 소를 끌고 와서 먼저 내 밭을 갈 수 있고, 이웃 백성을 잡아다 먼저 내 밭의 김을 매어도 누가 감히 나에게 대들 수 있단 말인가? 네놈의 코에 잿물을 붓고, 상투를 잡아 꺼두르고 수염을 다 뽑아도 원망하는 소리를 내뱉는 놈 아무도 없으리라."

이제 양반은 자존심마저 팔아먹었다.

19세기에 이르러서 대구 지방에 양반이 80%가 넘었다.

개나 소나 다 양반이라고 하였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양반은 사람들에게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싸울 때 멱살을 잡고 “야! 이 양반아!” 하고 소리쳤다.


3-1. 그리스도인의 자긍심과 자부심


나는 조선 시대 양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그리스도인을 생각해 보았다.

초대교회 안디옥 지방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처음 불렀다.

그때 당시 불신자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보니 정말 예수 그리스도 닮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배타적이지 않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던 로마 군인들도 그들의 인품과 행동에 감동하여 예수를 믿었다.

한국 초대교회에서도 민족의 선각자들이 대거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다.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고당 조만식 등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들었다.

1%도 안 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자긍심과 자부심은 대단하였다.


3-2 그리스도인의 자존심


요즘은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바로 그날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교회는 힘을 얻게 되었다.

엄청난 헌금이 교회에 쌓이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 큰 교회들이 교파마다 경쟁하듯 세웠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장군이 되려면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어느 큰 교회 안수집사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말도 하였다.

그만큼 큰 이권이 거기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자긍심과 자부심은 점점 사라지고 바리새적인 자존심만 남기 시작하였다.


3-3 예수 믿는 것들!


천만이 넘는 기독교라고 떠들어 대지만, 이제 기독교는 껍데기만 남았다.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들” 하며 비아냥거린다.

기독교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이제 충분하지 않은가?

잃어버렸던 첫 열심, 순수하였던 첫 믿음, 진실하였던 첫사랑을 다시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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