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569년 추운 겨울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일이다. 더크 윌렘스(Dirk Willems)는 재 세례를 받고 이단으로 몰려 감옥 탑에 갇혔다. 그는 헝겊을 매듭으로 이어 만든 밧줄을 타고 내려와 탈출에 성공했다. 경비병들이 뒤쫓아 오는데 눈앞에 얇게 언 빙판이 있었다. 피할 길이 없어 죽기 살기로 빙판 위를 달렸는데 다행히 얼음은 깨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쫓던 경비병은 빙판을 건너는 순간 얼음이 깨지면서 차가운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윌렘스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냥 두고 가면 자신은 살 수 있지만, 경비병은 차가운 얼음물 속에서 죽을 것이다. 잠시 갈등하던 그는 돌아가서 그를 안전하게 끌어내었다. 그는 다시 체포되었고,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말뚝에 묶여 화형당해 죽었다. 성경 말씀을 배운 그대로 실천하는 원칙주의자였던 더크 윌렘스는 불행한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신앙적 후손들인 메노나이트들은 지금까지 용서를 신앙강령으로 삼고 있다.
2.
다윗은 본거지인 시글락에 수비병 한 명도 남겨두지 않고 전쟁터에 온 이후 가족에 대한 걱정이 컸다. 다행히도 다시 시글락으로 돌아가라는 블레셋 왕 아기스의 말을 듣고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무려 사흘 길이었다. 군사들은 지쳤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안될 때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더니 불길한 예상은 적중하였다. 3일 전에 아말렉 족속이 시글락을 불태우고, 가족을 한 명도 남김없이 다 포로로 잡아갔다. 600명의 군사와 다윗은 울 기력이 없을 때까지 땅바닥을 치며 울었다.
아말렉 족속은 이스라엘 남쪽 광야지대에 살고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전에 사울의 추적을 피해 다윗이 광야에 숨었던 것도 그곳이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사울은 3,000명의 군사로도 다윗을 찾아내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윗의 군사 600명으로 도망친 아말렉 족속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가족이 없다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기에 그들은 다시 일어섰다. 삼일 길을 달려왔지,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지, 정말 남아 있는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어디에선가 고통받을 가족을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그들은 무작정 남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달렸다. 비가 올 때만 잠시 물이 흐르는 건천인 브솔 시내에 다다랐을 때, 200명은 더는 달려갈 힘이 없다고 주저앉았다.
결국, 남은 400명을 데리고 정처 없이 달리는데 광야에 쓰러져있는 이집트사람 하나를 만난다. 다윗은 그에게 떡과 물, 무화과와 건포도를 제공한다. 지금 가족을 찾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달려가야 할 시점에 부족한 식량을 나누어 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약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다윗은 사실 이스라엘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성경은 늘 강조하기를 너희가 이집트의 노예 생활하던 약자였음을 기억하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이집트사람은 아말렉의 종이었는데 병들었다는 이유로 광야에 버림받은 것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던 아말렉은 힘의 논리, 강자의 논리로 사는 족속이다. 반면 다윗은 약자를 돌아보는 성경의 논리를 몸소 실천했다. 설령 주변의 부하들이 불평하여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성경의 윤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실천해야 한다. 결국, 이집트 사람의 도움으로 잃었던 가족을 되찾고 아말렉이 노략질한 모든 전리품을 얻게 되었다.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는 400명은 남아있는 200명의 군사와 충돌이 생겼다. 그들은 자기들이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을 그동안 쉬고 있던 200명과 나누기를 거절하였다. 그때 다윗은 다시 한 번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다윗의 주장은 이러하다.
1) 전쟁의 승패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다. 따라서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당연히 나누어야 한다.
2) 우리가 아말렉을 쫓아간 것은 전리품 때문이 아니라 가족의 생명 때문이다. 전리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본질이 아닌 부차적인 것으로 싸우는 일은 합당치 않다.
3) 이스라엘은 약자의 모임이다. 우리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서로가 마음을 같이하는 신앙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능력 위주, 성과 위주의 삶은 우리와 맞지 않는다. 그는 전리품을 자기 군사들에게만 나누어 준 것이 아니라 피해를 본 남부 유다 모든 족속에게도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다윗의 정신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에서 모범적인 임금의 모습이다.
3.
상황 따라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아무도 원칙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당장에는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그래도 진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다.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하면서 리더십이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다시 원칙으로 돌아올 때 이스라엘 왕으로서 우뚝 설 수 있었다. 오늘날 기독교가 다시 리더십을 회복하려면 다른 길이 없다. 본래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정신으로 돌아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