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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r 06. 2016

애증의 에돔을 방문하다.

마침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페트라에 도착했다. 페트라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지 중 하나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페트라의 알 카즈네

그렇지만 페트라는 무엇보다 에돔 족속이 살았던 곳이기에 더 보고 싶었다. 구약의 오바댜를 보면 에돔 족속이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라고 했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그곳은 천혜의 요새였다. 본래 에돔은 히브리어로 ‘붉다’는 뜻인데 에서가 동생 야곱에게 붉은 것을 먹게 해달라는 이야기에서 얻게 된 별명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살던 지역이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에돔이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암으로 이루어진 에돔 지역

야곱과 에서는 형제지간이긴 하지만, 창세기를 보면 이미 그들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유다 백성이 출애굽 해서 에돔 지역의 통과를 부탁했을 때 그들은 단호히 거절하였다.

“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 (민20:18)

결국 유다는 에돔을 피하여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에돔지역

후일 이스라엘이 나라를 세웠을 때 유다와 에돔은 왕의 대로를 두고 치열한 싸움을 반복하였다. 사실 에돔은 산악지대의 요새를 배경으로 해서 무역 통로인 왕의 대로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카바 만의 항구까지 손을 뻗쳐 북아프리카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무역을 함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더욱이 에돔 지역에서 생산하는 구리와 철은 에돔의 국력을 더욱 강하게 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말했다.

“누가 감히 나를 땅에 끌어 내리겠느냐?” (오바댜 1:3)

마치 에돔의 군인처럼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원주민

에돔은 그렇게 호언장담할만 하였다. 유다를 정복한 느부갓네살 왕도 에돔만큼은 끝내 정복하지 못했다. 에돔은 지각 변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좁고 가파른 절벽(시크 As-Siq)을 넘어 도시를 건설하였다. 좁게는 2m, 높이는 200m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바위로 이루어진 시크가 1.2km나 뻗어 있다. 200m 높이의 절벽 꼭대기에서 좁게 난 길로 공격하는 적들을 물리치기란 쉬운 법이다. 위에서 바위를 던지고 활을 쏘면 제아무리 대군이라도 능히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적 부유함과 난공불락의 성채를 가지고 있던 에돔으로서는 교만하여 당당하게 소리칠 만하였다.

그러한 에돔을 정복했던 왕이 바로 다윗이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에돔과 정략결혼을 통하여 왕의 대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에돔과 유다가 결정적으로 등을 돌리게 된 사건은 바빌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였다. 에돔과 유다는 일찍부터 북쪽 바빌론의 위협에 공동 대처하기 위하여 동맹관계를 맺었다. 서로 어려울 때 도와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바빌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 바빌론 제국 옆에서 낄낄거리며 비아냥대던 나라가 바로 에돔이었다.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기초까지 다 헐어 버리라."

에돔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 하이에나처럼 노략질하였다. 바빌론의 공격을 피하여 살아남은 자들을 잡아다 바빌론에 넘겨주기까지 했다. 오바댜를 비롯한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러한 에돔을 저주하였다.

에돔 사람이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오바댜1:4)

마침내 하나님은 나바티안족을 사용하여 에돔 족속을 세일 산에서 쫓아내었다. 페트라는 그렇게 해서 나바티안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에돔 족속은 유다 남쪽 사막으로 쫓겨나 이두매인(Idumean)이 되었다. 오갈데 없는 이두메인은 유대 종교와 풍습과 문화를 다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유다 땅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두메인은 끝까지 유다에게 가시노릇을 하였는데 그 중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헤롯 가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유다와 에돔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주의해야 할 것은 주인공 의식이다.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읽든지 선한 쪽, 좋은 쪽은 내 편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유다가 아니라 에돔에 속한 사람들이다. 조금만 풍요로우면 교만해지고, 남이 잘못 되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성경을 읽을 때 내 편한 대로 볼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의로운 자가 아니라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성경을 보는 눈이 정말 달라질 것이다.

조용히 주인을 기다리는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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