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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r 04. 2016

불평이 당연하다. 광야 체험

팔레스타인의 지형은 굴곡이 심하므로 새로운 길을 개발하거나, 옛길을 보수하기가 쉽지 않다.

성경에 길을 보수하고 수축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것은 엄청난 공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긴 해안선을 따라 뻗어 있는 '해변 길'과 요단 동편 고원지대를 따라 뻗어 있는 '왕의 대로'다.

해변 길을 이용하면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 불과 일주일이면 갈 수 있다.

어느 시대나 나라의 사신들과 상인들과 원정 군대들은 이 길을 지나갔다.

이집트에서는 이 길을 "바로의 길"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이집트 군대의 북진로였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세티가 가나안 정복 원정길 (아가페 성서 지도에서)

모세가 왕자 수업을 받은 후 원정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했다면, 이 길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로 가면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먼저 시내 산에 가서 이스라엘을 정비하고자 하였다.

시내 산이 어디인가에 대하여 학자마다 각기 다르게 주장하므로 아직 확실한 위치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출애굽의 여정에 나타난 지명들은 대개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는 광야에 있는 장소들이어서 그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다만 출애굽의 출발점인 라암셋과 가데스 바네아만 확실하고 나머지는 모두 추정할 뿐이다.

아무튼, 가장 좋고 쉬운 해변 길을 포기하고 어렵고 힘든 광야 길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시내 산이라 추정하는 곳에 성 캐터린 수도원이 있다.(두란노 성서 지도에서)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정탐꾼을 보냈다.

불행하게도 정탐꾼들의 부정적 보고 때문에 이스라엘은 다시 광야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38년 광야생활을 하다 본격적으로 가나안 땅을 향하여 진군하는데 이때 그들이 가고 싶었던 길은 왕의 대로였다.

왕의 대로는 요단강 동쪽 고원지대(지금의 요르단)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길이다.

이 길은 해변 길만큼 평탄하고 좋은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무역상들이 이용하던 길이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 평원까지 경로(두란노 성서 지도에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 평원까지 가는 여행은 민수기 20, 21장, 신명기 1, 2장, 그리고 사사기 11장 12~28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지리적인 혼란이 일어난다.

세렛 시내를 건넜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다른 것에서는 이론이 많다.

신명기 2장 14절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우리도 이번 여행 중에 세렛 시내를 건넜는데 시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였다.

우리가 건넌 세렛 시내는 불과 1, 2m도 안 되는 작은 개울이었다.

물이 흐르는 둥 마는 둥 하는 개울을 보면서 이 작은 시내를 건너기가 그렇게 힘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하면 쉬운 것도 어려운 일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험한 산도 쳐서 평지가 되는 이치를 세렛 시내에서 나는 보았다.

광야 길에서

버스는 우리의 목적지인 페트라를 향하여 모압 광야를 달렸다.

지평선이 멀리 아스라이 보였다.

우리를 인도하는 아브라함 선교사님이 갑자기 제안하였다.

"이 길은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갔던 광야 길인데 우리 한번 광야 길을 짧게라도 걸어보는 것이 어떻겠냐?"

"단 5분 만이라도 광야를 걸어보자."

선교사님의 제안에 우리는 모두 흔쾌히 동의하였다.

모두 광야를 걷는다는 사실에 흥분하였다.

광야 길에서

선교사님은 다시 우리에게 말하였다.

"아마 여러분은 단 5분을 걷지 못하실 것입니다. 지금 바깥 날씨가 몹시 추우니까 옷을 단단히 여미십시오."

우리는 한국의 겨울 복장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공항에서 바로 왔기에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광야의 추위가 아무리 심해도 한국의 두툼한 겨울 잠바가 다 맊아 줄 것이라 기대하였다. 

그런데 광야의 추위와  모래바람은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광야에 내려선 우리 일행의 2/3는 증명사진 몇 장 찍고선 바로 버스에 다시 올라탔다.

나는 선교사님을 따라 광야의 길을 걸었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걸을 수가 없어 뒤로 돌아서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옷가지 틈새로 바람이 파고드는데 나는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우리는 5분을 걷지 못했다.

모두 "이만하면 됐어요. 우리 버스에 탑시다." 소리치는 바람에 나도 버스에 뛰어올랐다.

열사의 나라 이집트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은 겨울옷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 텐데 이 모압 광야를 어찌 걸었을까?

그 뜨거운 광야 길의 모래바람은 또 어찌 견뎠을까?

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다.

광야 길

사실 나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왜 그리 불평이 많은지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보았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옷이 해어지지 않는 기적을 경험하면서 어찌하여 저들은 날마다 불평을 할까?

이스라엘 백성은 참 고약한 민족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광야를 걸어보고서 한가지 확신을 했다.

'불평은 너무나 당연하다. 자연스럽다. 불평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광야는 정말 최악이었다.

아마도 우리에게 이 광야를 걸으라고 했으면 38년이 아니라 380년을 뺑뺑이를 돌아야 하지 않았을까?

광야 길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최악의 환경에서도 불평하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다시 한 번 깨달음을 얻었다.

설령 최악의 환경이라도, 설령 죽는 자리에 선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삶은 감사와 기쁨이어야 한다.

광야 길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왕의 대로를 갈 수 없었다.

에돔과 모암의 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통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길도 없는 모압 광야를 우회해야만 했다.

지금 그 모압 광야 길은 요르단의 사막 고속도로로 바뀌었고, 수많은 차가 줄을 지어 쌩쌩 달리고 있다.

요르단 사막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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