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를 출발하자마자 유대 광야가 나타났다.
버스를 잠시 멈추고 유대 광야에 가 보았다.
넓디넓은 유대 광야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였다.
다윗이 양을 치던 곳, 예수님이 40일 금식 기도하셨던 곳이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유대광야는 변한 것 하나없이 옛적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잠시 성경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저기 어디쯤 요나단과 다윗이 슬픈 이별을 하였겠지.
세례 요한은 이 광야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겠지.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아픔과 고통과 죄악을 짊어지시고 이 골짜기 어딘가에서 금식하며 걸으셨겠지.
사람들은 유대광야에 왔으니 단체 사진을 찍자고 아우성이다.
이스라엘을 여행하면서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었다는 게 아쉬웠는데 지금이 바로 그러하다.
인증사진 몇 장 찍는 동안에 베두인 할아버지가 낙타 한 마리를 끌고 부리나케 올라온다.
할아버지보다 돈 버는데 이골이 난 친구들은 베두인의 어린 자녀들이다.
꾀죄죄한 몰골의 아이들은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조그만 팔찌를 들고 와 '1달러’를 외친다.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몇몇 성도들은 팔찌를 받지도 않고 돈을 건네준다.
다시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오는데 오른쪽으로 '선한 사마리아 여관’이란 선간판이 스쳐 지나간다.
베다니와 벳바게를 지나고 나니 예루살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
얼마나 와 보고 싶었던가?
예루살렘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언덕 위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작은 도시를 차지하기 위하여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세 종교가 그토록 피 흘리며 싸웠던가?
다윗이 여부스 족속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시로 만든 이후 지금까지 예루살렘을 차지하긴 위한 전쟁이 40여차례나 있었다.
사실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아래 약 80년간 통일 이스라엘이 제 모습을 갖추었을 뿐이다.
솔로몬 사후 350년간 이스라엘은 두 동강 나면서 정치적 분쟁과 종교적 분열과 군사적으로는 패배의 역사가 반복되었다.
여부스 족속들은 이곳에 태양신 샤하르(Shahar : 일출의 신)와 샬림(Shalim : 일몰의 신)을 섬겼다.
예루살렘(Jeru-Shalem)은 여부스 족속들이 섬기던 샬림 혹은 '샬렘 신의 집'이란 뜻이었다.
다윗이 여부스 족속을 몰아내고 이곳을 '샬렘 신의 집'이 아닌 평화(Shalom)를 뜻하는 '평화의 도시'로 의미변환을 하였다.
그 날 이후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로 불렸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절대 평화롭지 않았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아랍의 이슬람, 십자군, 영국 등 그 외에도 수를 헤아릴 수많은 족속이 성도(聖都, Holy City)를 차지하기 위하여 전쟁을 벌였다.
포위하고, 방어하고, 정복하고, 파괴하고, 건축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던 이 성이 정녕 평화의 도시라 할 수 있을까?
이 작은 언덕이 무슨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그토록 피 흘리며 싸워야 했을까?
유대인들은 로마에 나라를 빼앗긴 후 어떻게 해서든 예루살렘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지만, 그들은 언제나 약자였다.
예루살렘은 주로 이슬람과 기독교가 서로 주거니 뺏거니 하였다.
참고로 역사를 통하여 볼 때 유대교인들은 기독교가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것을 좋아했을까? 이슬람이 다스리는 것을 좋아했을까?
나는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더 좋아할 줄 알았다.
예루살렘에 관한 역사를 읽어가면서 깜짝 놀란 것은 기독교가 이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슬람은 비교적 관용적인 태도로 유대인들을 대했지만,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을 멸시하며 예루살렘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였다.
이제는 유대교가 이슬람과 기독교를 제압하고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있다.
세 종교가 신의 이름으로 서로 어우러져 뺏고 뺏기는 싸움을 하며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예루살렘은 다 알 것이다.
예루살렘은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평화의 도시는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아니 피 냄새가 아직도 진동하는 듯하다.
일부 종말론자들은 마지막 때가 되면 전세계가 하나가 될 터인데 그때 수도는 예루살렘이 될거라고 한다.
절대로 그럴리가 없지만, 혹여나 그런 시도를 하는 자가 있다면 이 작은 도시 예루살렘은 또 얼마나 요동칠 것인가?
예루살렘에 얼마나 큰 피바람이 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