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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r 25. 2016

예수님도 산책하셨다.

벳바게와 베다니

벳바게와 베다니는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제일 마지막 감람산 위에 있는 마을이다. 현재 베다니는 팔레스타인 관할 구역이어서 우리는 벳바게 마을을 잠시 들렸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막11:1)

벳바게 교회

벳바게(Bethphage)와 베다니(Bethany)는 무화과 나무가 많은 동네로 널리 알려졌다. 벳바게는 무화과의 첫 열매인 파게라는 말과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이트 란 말의 합성어다. 베다니는 무화과를 뜻하는 테에나와 베이트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벳바게와 베다니는 무화과 동네라는 뜻이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까지는 2k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시면 예루살렘보다는 베다니에서 주로 머무셨다. 전에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이틀을 더 유하시던 곳은 벳바게다. 벳바게와 베다니는 같은 감람 산에 있는 바로 옆 동네였다. 예수님은 바로 옆 동네에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일부러 가지 않았다.


예수님은 습관적으로 감람 산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바라보셨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눅22:39)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다. "어느 때에 이런 일(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나겠습니까?”(막13:3,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종말과 말세에 될 일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바로 그 감람 산에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시고 자신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도 바로 장차 이스라엘에게 내려질 심판을 말씀하신 것이다.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나 무신론자들은 무화과 때가 아닌데 무화과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신 모습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는 무화과의 특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무화과

이스라엘은 건기와 우기 두 계절로 나눈다. 건기는 보통 유월절(우리 달력으로 편하게 생각하려면 부활절)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건기에는 여름 과일들이 풍성하게 맺힌다. 8월에는 포도, 9월에는 석류, 10월에는 올리브, 11월에는 대추야자가 열린다. 건기 내내 열리는 과일은 바로 무화과다. 그러나 우기에는 열매 맺는 나무가 없다. 6개월 우기가 바로 유월절 즈음에 끝나는데 그때 처음 열리는 과일이 바로 무화과다.

처음 익은 무화과(파게)

성경은 처음 익은 무화과라는 말을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다.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미가서7:1) 도대체 처음 익은 무화과가 무엇이길래 그것을 사모하는가? 사실 처음 익은 무화과는 파게라고 해서 아직 열매가 제대로 익지 않은 파란 무화과를 뜻한다. 그런데도 그것을 사모하는 것은 우기 동안 과일을 먹지 못하다가 이제 생과일을 먹을 수 있어서 유대인들은 처음 익은 열매를 사모하였다. 비록 성숙한 무화과에 비해 당도가 떨어지지만, 주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따먹게 하였다. 사실 파게를 따 주어야 잘 익고 맛있는 테에나(무화과)를 얻을 수 있다.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사28:4) 아직 본격적인 무화과 철은 아니지만 먹을 것이 없어 하루 한 끼 먹기조차 힘든 유대인들은 공짜로 먹을 수 있는 파게가 참으로 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잘 익은 무화과 (테에나)

예수님이 본격적인 무화과 철은 아니지만 분명 파게가 열려서 가난한 유대인들을 기쁘게 해야 할 시기인데 파게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마치 이스라엘의 현재 모습과 같음을 보시고 그것을 저주하신 것이다. 파게가 없다는 것은 곧 잘 익은 테에나도 열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는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나무이다. 무화과나무 동네에서 열매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은 험하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두 모였다. 갈릴리에 계셨던 예수님께서도 다른 유대인들처럼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으시고 요단 강을 따라오셨거나, 아니면 요단 동편 고원지대를 통과한 후 여리고를 거쳐 예루살렘에 오셨다. 여리고와 감람산은 고도차이가 1,200m 정도 되고 광야이기 때문에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다. 어렵게 어렵게 그 힘든 길을 걸으시고 마침내 감람산 정상에 오르셨다.

감람 산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은 이제 내리막길이고 편안한 길인데 예수님은 벳바게에서 나귀를 끌어 오게 하셨다. 그리고 그 나귀를 타고 감람산을 내려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어렵고 힘든 길은 걸어서 오신 주님이 예루살렘을 코앞에 두고 나귀를 타신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것은 자신은 정복자로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서, 섬기고 낮아져 자신의 온 몸을 내어주시려는 뜻으로 그리 한 것이다.

종려나무(사진 : 윤금숙권사)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유대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맞이하였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12:13) 사실 종려나무는 예루살렘 같은 고지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여리고처럼 사시사철 따뜻한 곳에서 잘 자란다. 따라서 유월절을 지내는 유대인들이 여리고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예루살렘까지 들고 올라왔다. 종려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오아시스인 엘림에 도착했을 때 70그루의 종려나무를 보았다. 그러므로 종려나무는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추억케 하는 나무다. 그리고 종료나무는 유대민족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나무이다. 종려나무는 다 베고 남은 그루터기를 불태워도 다시 싹이 나고 자란다. 불사조같은 종려나무를 흔드는 것은 로마의 압제하에서도 끝까지 항거하는 의미였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것을 간절히 기대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나라를 회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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