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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r 27. 2016

베데스다 못은 진짜 연못일까?

우리는 감람산에서 내려와 스데반 문을 통과하여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갔다. 스데반 문은 라이언 문이나 마리아 문으로도 알려졌는데 각기 이름마다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기독교는 이 문을 스데반 문으로 부른다. 기독교 첫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가 이 문밖으로 끌려나가 순교를 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문밖 약 200m 동남쪽 기드론 골짜기에 그리스 정교회 소속인 스데반 교회가 있다.

가톨릭은 이 문을 마리아 문으로 부른다. 이 문을 통과하여 약 50m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마리아의 어머니 성 안나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 교회는 AD6세기경 이곳이 마리아의 생가라는 전승이 생겨나고 그 후 AD1,100년경 십자군이 마리아의 모친 이름을 따서 성 안나 교회라고 하였다.

이슬람은 이 문을 라이언 문으로 부른다. 터키의 슐레이만(Shuleiman)이 예루살렘 성벽을 쌓기 전에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그 꿈속에서 술레이만이 네 마리의 사자에게 먹힐 뻔했다. 꿈을 풀이한 학자들은 '거룩한 성인 예루살렘을 재건하지 않은 채 왕만 좋은 집에서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슐레이만은 예루살렘 성벽을 쌓으면서 그것을 기념하여 성문 양쪽에 사자상을 새겨두었다. 이 문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각자의 취향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기독교인인 나로서는 스데반 문으로 부르고 싶다.

우리는 스데반 문을 통과하여 베데스다로 갔다. 예루살렘을 가기 전에 읽었던 책에는 '베데스다 연못의 물은 늘기도 하고, 혹 줄기도 하며 이따금 끓어오르는 간헐천이라'고 설명하였다. 아마도 예루살렘을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이 쓴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베데스다 못을 살펴보고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베데스다 못은 연못이 아니고 단지 빗물 저장고였다.

(사진 : 윤금숙 권사)

베데스다 못은 BC200년 경 마카비 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카비는 혁명으로 예루살렘을 탈환한 후 대규모 희생봉헌 행사를 위하여 충분한 급수시설이 필요했다. 그래서 성전 북쪽 골짜기의 경사를 이용하여 겨울에 내리는 빗물을 모으도록 만들었다. 처음에는 희생제물인 양을 파는 시장 가까이에 있어서 양의 못이라고도 불렸다. 그들은 이 못에서 희생에 쓸 양들을 씻었다.

(사진 : 윤금숙 권사)

그 후 헤롯이 성전을 개축하면서 베데스다 못도 새롭게 하였다. 그는 행각 다섯 개를 세우고 로마의 공공목욕탕처럼 멋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스라엘이 그리스에 지배를 받으면서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면이 많다. 그리스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가 의학의 신으로 숭배되었는데 BC 6세기부터 신전을 중심으로 클리닉이 세워졌다. 그때 치료법은 깨끗한 물을 마시고 씻는 것이 전부였다. 아스클레페이온은 항상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서 몸을 씻고,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진흙 마사지를 받게 하였다. 베데스다는 몸을 씻기 위한 환자들이 모여들고 자연스럽게 치료하는 집이 되었다.

(사진 : 윤금숙 권사)

그러면 성경에 물이 동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베데스다 못은 두 개의 저수조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바위를 파서 만들었고, 다른 것은 큰 화장석 블록으로 만들어져 있다. 두 저수조 사이의 분리 벽이 있는데 물이 북쪽 저수조에서 남쪽 저수조로 흐르도록 하였다. 북쪽 저수조에 일정한 양의 물이 차면 수문을 열어서 남쪽 저수조로 흘려보냈는데 그때 환자들은 물이 동한다고 여겼다. 2,000년 전 우리나라로 말하면 고조선 시대 사람들이었으니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한편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신약학자 예레미아스의 생각이기도 하다.

베데스다 못의 평면도

그러니까 베데스다는 연못이 아니고 간헐천은 더욱더 아니다. 베데스다는 단지 빗물을 모아두는 저수조였고, 헤롯이 개량한 이후에는 환자들이 와서 몸을 씻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결국, 양의 못에서 자비의 집을 뜻하는 베데스다로 이름이 바뀌어 불려졌다. 요한복음에 38년 된 병자를 베데스다에서 치유 하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진정한 치유의 손길은 그리스의 아스클레페이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요한복음 5:2-4)

성경에 괄호를 사용한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가보지 않으면 성경을 해석할 때 전혀 엉뚱한 해석을 하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곳이 바로 베데스다 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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