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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r 31. 2016

보아스는 정말 부자였을까?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 이야기가 나온다. 

신학적으로 풀어나갈 수도 있지만, 단순히 중동 문화라는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명백히 농부와 목자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아담의 첫째 아들 가인은 농사를 짓는 농부였고, 그의 동생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였다. 

때가 되어 둘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것만 받으셨다. 

형은 들에서 동생 아벨을 때려죽였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당시 사회 상황에서 농부와 목자 사이의 갈등이 심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중동 지방에서 목자와 농부의 충돌은 심심찮게 발생하였다. 

Paolo Guidotti, il Cavalier Borghese [Italian, 1560-1629]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 이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다. 

같은 이스라엘 땅이니까 두 나라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았으리라 추측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유다가 속한 남쪽은 산지 고원지대와 광야가 많은 곳으로 주로 목축에 종사하였다. 

반면에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북쪽은 넓은 평야도 있고, 푸른 목초지도 있어서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이다. 

북부 이스라엘은 비옥한 농토를 바탕으로 농사를 지으며 풍요롭게 살았다. 

자연스럽게 북쪽은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을 섬기는 쪽으로 갔고, 남쪽 유다는 오직 하늘만 바라보며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유지하자는 쪽으로 가게 되었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북쪽 이스라엘과 목축업을 기반으로 한 남쪽 유다는 늘 긴장과 갈등 관계 속에 있었다. 

두란노 성서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농경 민족은 농산물이 풍부하여 인구밀도도 높고 큰 힘을 가진다. 

반면에 목축업을 하는 광야 민족은 흩어져 목양을 하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낮을 수 밖에 없다. 

농사 지을 땅도 없으니 늘 기근에 허덕이는 약자일 수 밖에 없다. 

광야 민족 이스라엘에게 가장 큰 시험은 농경민족의 풍요를 바라며 바알 앞에 고개 숙이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농경문화에 동화되어가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어떻게 해서든 농사지을 땅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었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받은 시험도 같은 종류의 시험이었다.   

유대광야

남쪽 유다도 인구가 늘어나면서 농경지가 부족해지자 목자들은 점점 광야로 밀려나갔다. 

목자들은 풀을 찾아 남의 포도원과 농경지에 들어가 양들을 먹이곤 했는데 이는 농부와 갈등의 요인이 되었다. 

헬라 시대에는 목자들이 양을 데리고 농경지를 지날 때는 양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도록 하는 법이 나오기도 했다.

농사꾼은 힘이 있었고, 목자들은 약한 존재였다. 

보아스의 들판

베들레헴에 들렀을 때 난 보아스의 들판을 보고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땅은 척박하고 여기저기 돌투성이 자갈밭이었다.

수천 년 동안 경작하며 작업을 한 현재의 모습이 그러하니 3,000년 전 모습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보아스의 들판 밑으로 약간의 평지가 있어 거기 농작물을 심었는데 그것마저도 작고 보잘것없었다.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들판을 가진 보아스를 베들레헴의 거부로 소개한 룻기의 이야기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보아스의 들판은 온통 돌뿐이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우리 관점에서 성경을 보는 것이다. 

성경은 그 시대 상황에서 먼저 보아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보아스의 들판은 작고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그 정도라도 가지고 있는 것은 베들레헴에서 제일 큰 부자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 대부분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아스의 들판 제일 아래 평지가 약간 보인다. 

다윗은 시 48편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이렇게 노래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시48:2) 

이상한 것은 이스라엘 지도를 살펴보면 예루살렘은 남쪽에 있다. 

그런데도 시온 산이 북방에 있다고 노래한다. 

이는 예루살렘보다 훨씬 남쪽인 유다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목자의 시각으로 보면 시온 산은 북방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그 시대 상황과 문화 지리적 상황을 고려하며 읽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아스의 들판 바로 옆으로 주민들이 살고 있다. 

베들레헴의 뜻이 떡집이라고 해서 그곳에 농업이 엄청나게 발달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면 안 된다. 

광야와 산지로 둘러 싸인 곳에서 보아스의 들판 정도만 있어도 대단한 것이고, 그곳에서 생산한 밀과 보리로 만든 떡(피따 빵)은 유명하여 떡집(베들레헴)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남쪽 유다의 삶은 궁핍했다는 뜻이다. 

룻은 풍요로운 땅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이라는 가난하고 못사는 동네로 이사왔던 것이다.

베들레헴은 말 그대로 산지 마을이다.

보아스는 베들레헴에 사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부자임이 틀림없지만,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으로 보거나, 현대의 눈으로 보면 부자라 할 수 없다. 

3,000년 전의 이야기니까 그 간격을 뛰어넘는 지혜를 발휘하여 성경을 읽으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베들레헴 목자들의 교회

참고로 보아스의 뜰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베들레헴 목자들의 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기념교회이지 정말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목자들이 그곳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곳은 베들레헴에서 불과 1km밖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목자들이 밖에서 노숙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아서 최소한 몇십km 밖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는 뜻이다. 

가까이 있으면, 당연히 집에 들어가서 편안히 잠을 자지 노숙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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