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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08. 2015

영혼의 글쓰기

솔제니친의 노트 

스탈린을 모독하는 말을 편지에 썼다는 이유로 솔제니친은 시베리아 형무소에 8년동안 갇혔다.

그는 6년동안 무료한 유형생활을 하던 중, 문득 글쓰기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종이란 종이는 다 압수당하고, 조그마한 글자도 암호로 의심받기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솔제니친은 사람의 머리에서 불필요한 정보들을 지워버리면, 기억공간이 훨씬 넓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머리속으로 글을 썼다. 

자신이 쓴 글을 몽땅 외워버렸다. 

그는 줄을 서고, 작업장으로 행진하고, 이런 저런 일로 차례를 기다릴 때마다 묵주를 돌려가면서 자신이 머리 속에 쓴 글들을 암송하였다. 

물론 간수나 다른 사람들은 그가 정말 신실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형기를 마치고 나오자, 차곡차곡 외워 놓은 구절이 무려 1만 2천행에 이르렀다. 

그는 미친 듯이 종이에 옮겨 적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그의 유명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작품이다. 

평범한 농민 슈호프를 주인공으로 하여 교정수용소의 가혹한 현실을, 그리고 그곳에서도 없어지지 않았던 인간애에 초점을 맞추어 담담하게 그려내었다.   


강제수용소의 공통된 특징은 인간을 순수하게 물질적인 존재로 만들려고 고안된 장치다. 

스키너의 실험상자처럼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을 생각 없는 존재로 만들어서 예측 가능하며 철저하게 통제된 행동만 하도록 하였다. 

폐쇄된 수용소 안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규제를 받았다.   


그러나 수용소의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교화된 줄 알았던 수용소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처럼 전혀 교화되지 않았다. 

나치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코리텐붐, 심리학자 베텔하임과 프랑클, 화학자 프리모 레비, 소설가 저지 코진스키, 에티 힐레숨 그리고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솔제니친과 시인 이리나 라투쉰스카야 등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은 영혼이 빠진 로봇이 아니라 다시 기운을 차리고 정상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활기차게.  


육체를 억류한 자들이 인간의 정신을 살찌우는 자양분을 모조리 차단했을지라도, 그 영혼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도리어 뜨겁게 끓어 올랐다. 

몸뚱이는 영양실조로 비쩍 말랐을지언정, 도덕성과 예술, 희망을 추구하는 의식만큼은 그 안에서 나날이 고양되어 갔다.

그처럼 열악한 환경에서는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자질들이 마치 바위를 뚫고 터져나온 샘물처럼 용솟음쳤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우리는 지금 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가?

아니면 정신과 영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가?

나의 글쓰기는 자꾸만 잠들어가는 나의 영혼과 정신을 일깨우는 치열한 작업이자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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