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의 혼인잔치
윌 스미스 주연의 스포츠 메디칼 실화 영화인 게임 체인저(Concussion, 2105)를 보았다.
2002년 나이지리아 출신 법의학자 베넷 오말루 박사(윌 스미스)는 마이크 웹스터라는 50세 남자의 부검을 맡게 된다.
마이크 웹스터는 피츠버그의 전설적인 미식축구 선수로 명예의 전당에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베넷 오말루는 웹스터의 부검을 계기로 미식축구 선수들의 만성 외상성 뇌 손상을 밝혀내다.
그리고 NFL(미국 프로축구연맹)이라는 거대 조직과 싸움을 시작한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공갈 협박 앞에 위축될 만도 한데 오말루 박사는 끝까지 싸워서 마침내 승리한다.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엘라 골짜기에서 벌인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통과 관습과 편견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온다.
그중에 여자가 총 5명(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마리아)이 나온다.
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족보에 여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 여자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매우 예외적이다.
더욱이 이 여자들은 한결같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여자들이다.
이방인이거나 행실이 단정치 못한 여자들이다.
사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란 너무나 열악하다.
유대인에게 딸 아이는 아버지의 재산과도 같다.
잘 키운 딸은 나중에 시집 보낼 때 큰 지참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동의 문화는 법보다 가문의 체면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딸이 몸을 함부로 굴려 처녀성을 상실하면, 아버지는 딸 아이를 죽임으로 가문의 명예를 지키려고 하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딸을 죽이는 명예 살인은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것도 있겠지만, 상품 가치가 떨어진 딸에게 내리는 가혹한 형벌 같다는 생각도 든다.
유대의 결혼 풍습은 일반적으로 두 단계가 있다.
결혼이 있기 전 먼저 많은 증인 앞에서 약혼식을 한다.
그리고 각기 1년 동안 각자의 집에서 결혼을 준비한다.
이때 여자는 특별히 몸조심을 하여야 한다.
그 후 2단계로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지참금을 가지고 신붓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결혼 선언을 한다.
“그녀는 나의 아내요, 나는 오늘부터 영원히 그녀의 남편이다."
이에 대하여 여자는 일체의 선언을 하지 않는다. 1)
여자는 피동적이며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신랑은 자신의 집으로 신부를 데리고 와서 혼인잔치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데 주로 신랑과 신부를 칭찬하는 내용을 노래한다.
혼인잔치는 보통 7일 동안 계속하는 데 중요한 것은 첫날 밤이다.
첫날 밤의 피를 흘린 흔적이 있어야 처녀성을 확증하고 결혼이 정식으로 완성된다.
만일 피를 흘리지 않고 처녀성이 확증되지 않으면, 신부 아버지는 크게 망신을 당하고 결혼은 파국으로 끝난다.
그러니까 여자는 아버지에게 속하였다가, 남편에게 속하고, 그다음은 아들에게 속한다.
이것이 유대 여자들의 일생이었다.2)
기원전 2세기 초에 예루살렘의 유명한 학자인 벤 시라(Ben Sira)는 지혜서에서 여자에 대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여자들과 함께 앉지 마라.
이는 옷에서 좀이 나오듯이
여자로부터 여자의 심술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자의 친절보다 남자의 심술이 낫나니
여자는 치욕과 비난을 낳을 뿐이다."(집회서 42:12-14)
예수님 당시 여자들의 지위는 모든 영역에서 남자 아래에 종속되어졌다. 3)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주 특별한 길을 걸어갔다.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
이 말은 곧 약혼한 처녀에게 죽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신명기는 만일 약혼한 처녀가 남자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면 돌을 던져 죽이라고 하였다.(신22:23)
그런데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였다.(눅1:38)
약혼한 처녀는 이런 결정을 할 권한이 전혀 없다.
그녀는 아버지의 소유물이고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버지뿐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버지와 상의도 없이 자기 임의로 이런 엄청난 결정을 하였다.
요즘 말로 하면 혁명적 여성운동가의 모습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
마리아가 얼마나 센 여자인지 복음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녀가 가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아 갔을 때도 상황은 비슷하다.
가나는 나사렛에서 불과 7km 떨어진 이웃 동네이기에 아마도 이 집은 마리아의 친척집이 아닐까 생각된다.
보통 결혼 잔치는 7일 동안 계속되었으나 특별한 경우는 두 주간으로 연장하기도 한다.
결혼 잔치가 열리면, 문을 활짝 열어놓고 누구라도 환영하며 접대한다.
이 잔치 기간에 손님을 미처 예측 못해 음식을 비롯한 포도주가 모자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 여장부인 마리아는 30이 넘은 아들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이야기한다.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이다.
30 넘은 아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다.
이후에도 예수님이 귀신들렸다는 소문을 듣고 온 가족을 대동하여 예수님을 데리러 온 마리아의 모습도 무척 예외적이다. (막3:32)
성경의 저자들은 왜 이런 기록들을 남겼을까?
그것은 유대교의 전통과는 달리 기독교 초기부터 여성들이 맹활약을 하였기 때문에 여성들의 활동사항을 적극적으로 기록한 것 같다.
기독교는 그 출발부터 매우 남녀 평등적이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사도행전1:14)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갈리리 가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처음 표적이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만들어가실 나라가 완전히 새로운 나라임을 보여주는 표적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문이 열려 있다.
남자나 여자나,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언어와 민족을 뛰어넘어 그 누구라도 언제든지 반겨 맞이하며 함께 환희와 기쁨을 누리는 나라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주(註)
1) 롤랑 드보, 구약 시대의 생활 풍습, 대한기독교서회, 76쪽
2) 요아힘 예레미아스, 예수시대의 예루살렘(신약성서시대의 사회경제사 연구), 한국신학연구소, 450쪽 이하 참조
3) 케네스 E. 베일리, 박규태 역,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새물결출판사, 294-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