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산(Bashan)은 비옥한 평야라는 뜻이다.
바산은 요단 동북쪽에 있는 해발 770m의 넓고 비옥한 고원 평야지대다.
이곳은 화산에서 분출된 현무암이 용해되어 비옥한 땅을 이루었다.
북으로는 헐몬 산에 이르고, 남으로는 길르앗 산지와 야르묵 강까지, 서쪽으로는 갈릴리 호수, 동으로는 하우란 산맥에 다다르는 이스라엘에서 최고로 비옥한 평야다.
요단 동편의 땅임에도 불구하고 강수량이 풍부하고 동쪽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동풍을 하우란 산(Mt Hauran, 1,666m)이 막아주고 있어서 천혜의 곡창지대요, 초목이 무성한 목축지대로 이곳에서 풀을 뜯는 가축들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였다.
이곳의 수목이 얼마나 무성한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신33:22)” 말할 정도다.
바산의 동쪽 끝에는 하우란 산이 있는데 그 너머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 지대다.
이 지역은 어느 시대에나 반역자들과 산적들의 이상적인 도피처였다.
이곳은 헬레니즘 시대에는 트라코니타스(Trachonitis, “거친 황무지”라는 뜻)라 하였고, 현재는 옐-레자(el-Leja, 피난처)라고 부른다. 1)
확실하지 않지만, 이곳이 바로 "살인자의 도피성 바산 골란”(수21:27)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스라엘의 살인자들이 저 멀리 외딴곳, 하우란 산 너머 레자(Leja)에나 가서 살라는 뜻이 아닐까?
바산의 땅이 비옥하고 좋은 만큼 주변 나라들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었다.
바산을 두고 벌어진 전투는 성경에도 여러 차례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돌이켜 바산으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에드레이에서 싸우고자 하는지라.”(신3:1)
이때 모세는 바산 왕 옥을 멸하고 그 땅을 므낫세 반 지파인 마길 자손에게 주었다.
모세와 아론이 싸운 에드레이(Edrei)는 지금의 시리아와 요르단 국경 지대에 있는 도시다.
모세가 마길 자손에게 바산 지역을 주었지만, 이 지역을 이스라엘이 차지하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사실 바산 지역은 오래전부터 아람 족속이 지배하였다.
이곳은 수리아라고 불렸으며 현재의 시리아라고 할 수 있다.
이 바산 지역을 다시 차지하게 된 것은 북쪽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때 이르러서다.
그동안 이스라엘을 늘 괴롭히던 가장 큰 원수인 수리아는 앗수르의 공격으로 심히 약해졌다.
그리고 앗수르 역시 북방에 새롭게 등장한 우라르트(Urartu Armenia, 아라랏)를 막기 위해 골몰하던 때였다.2)
여러보암 2세는 국제 정세의 변화에 힘입어 40여 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렸다.
그의 영토는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왕하14:25) 회복하였으니 이는 솔로몬 시대의 판도와 거의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풍요를 바탕으로 사마리아는 사치와 타락에 빠져들었다.
그는 여호와를 떠나 바알을 섬기며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를 섬기는데 열심이었다.
여로보암 2세 당시 호세아와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였는데, 호세아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내 진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그들이 어느 때에야 무죄하겠느냐.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호8:5,6 cf 호13:2, 14:2)
아모스 선지자는 바산의 암소를 빗대어서 쾌락과 탐닉에 빠져있는 이스라엘의 부유층들을 공격하였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암4:1)
여기 ‘바산의 암소’에 대한 해석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호화롭고 사치하고 권세 있는 귀분인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셈어에 능통한 Henderson을 비롯하여 칼빈은 문장 중에 여성형 술어들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여성으로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서 바산의 암소들은 귀부인 여성이라기보다는 왕과 방백들과 짝하여 타락해 가는 부유한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3)
나는 헨더슨의 해석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 시대의 부유한 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의 타락상을 말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들은 바산의 암소가 풀을 뜯어 먹을 때는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만 몰두하여 남들을 쳐다 보지 않는 것과 같았다.
이들은 날마다 술이나 값비싼 음식으로 호화로운 잔치를 하면서 문 앞에 굶주려 죽어가는 가난한 백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다.
시대는 조금 다르지만, 요아힘 예레미야스는 예수님 당시 부자들의 허례허식에 대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예루살렘의 가장들은 손님을 많이 초대해 외관상 화련한 잔치를 할 것인지 아니면 훌륭하게 접대하여 실속을 차릴 것인지를 고려하곤 했다."
사람들은 거액의 임금을 주고 요리사를 고용하였다.
그들은 식사 때 크리스털 유리잔으로 희석되지 않은 포도주를 마시고 분위기가 고조되면 손뼉을 치며 춤을 추었다. 4)
이스라엘의 향락과 퇴폐풍조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후로도 바산 지역은 끊임없이 지역갈등과 분쟁을 일으켰다.
현대에 이르러서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전쟁을 통해 결국은 이스라엘이 바산 지역의 일부인 골란고원을 차지하였다.
골란 고원에 올라가 보면 바산의 암소와 그 지역이 얼마나 비옥한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주(註)
1) 구약성서 지리학, 아하로니, 대한기독교출판사, 100쪽
2) 구약 이스라엘사, 김희보, 총신대학출판부, 301쪽
3) 구약 아모스 주해, 김희보, 총신대학출판부, 169-170쪽
4)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요아힘 예레미아스, 한국신학연구소, 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