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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pr 26. 2016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땅

느보산에서 

우리는 일주일간의 이스라엘 여정을 끝내고 다시 요르단 땅으로 들어섰다.

지금은 요르단 땅이지만 국경 개념이 없던 구약 시대는 요단 동편의 땅이라 불렀다.

우리는 구불구불한 싯딤 계곡을 한참 오른 끝에 느보 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해발 838m의 산 정상에는 모세 기념 교회가 있다.

모세 기념교회

모세가 여기 서서 저 멀리 요단 건너편 이스라엘 땅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신3:25)

그러나 하나님은 거절하셨다.

"너는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신3:27)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너무 무정하다고 말한다.

지난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여기까지 왔는데 가나안 땅을 밟게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 작은 요단 강을 건너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한 번 건너가게 하시지.

그것은 인정에 끌리는 우리들의 생각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밟을 준비가 안 되었다 생각하시고 38년 동안 광야를 헤매게 하셨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신2:14)

세렛 시내는 처음 페트라를 갈 때 우리도 건너가 보았지만, 그것은 아주 작은 실개천이었다.

그 작은 시내를 건너는데 38년을 황무한 광야에서 훈련을 시킨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세렛 시내를 건너면서 얼마나 큰 감동이 있었을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싯딤계곡을 지나 느보산으로

이제 요단 강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요단 강은 세렛 시내와 또 다른 엄청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요단 강을 건넌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경험이다.

그것은 지금부터 광야생활이 끝난다는 뜻이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 땅에서 자기들의 집과 같은 편안함을 가진다는 뜻이다.

이제까지 나그네와 행인 같은 삶을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그 땅의 주인으로 살게 되었다.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애굽의 노예 신분에서 명실상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뜻이다.

싯딤 계곡의 양무리들

지금까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던 어린아이였다면, 요단 강을 건너는 순간 당당한 성인으로 자기 앞가림을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서, 하나님이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로서 온 천하에 선포하는 날이다.

이스라엘이 새롭게 거듭나는 그 순간 지도자의 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까지 모세가 수고하고 애쓴 것도 사실이지만, 새로운 나라는 새로운 지도자에 의하여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싯딤 계곡 입구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긴 하였지만, 이제 그 율법을 온전히 시행해야 하는 곳은 저기 보이는 저 가나안 땅이다. 

모세는 자신이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설명하여 설교한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야 할 지침들을 마지막으로 강론하는 모세의 얼굴은 비장하기까지 하였다.

싯딤 계곡

1. 저 땅은 너희들의 땅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땅이다.

따라서 너희들은 그곳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

애굽의 비천한 노예였던 우리를 건져주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이 가나안 땅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라!


2. 저 땅은 하나님의 땅이므로 너희는 이기적인 만족을 위하여 살지 마라.

모든 사람이 편안히 쉴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라.

그러므로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면서 경제 윤리를 바로 세워나가라.


3. 너희는 애굽의 종과 나그네였음을 기억하고 형제자매를 사랑으로 돌보며 살아라.

가난한 사람들, 고아와 과부들, 지나가는 나그네들, 레위인들

땅에 대한 근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그들을 소홀히 취급하지 말고 정성으로 돌보아라.

안타깝게도 짙은 연무가 끼어 가나안 땅은 잘 보이지 않았다. ㅠㅠ

신명기 설교를 모두 마치고 모세는 다시 느보 산 꼭대기에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이스라엘을 땅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신32:49,50)

모세는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묻혔지만, 무덤을 만들지는 않았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참고(參考)

1) 성경이 말하는 땅, 월터 브루그만지음, 정진원 옮김, CLC, 2013

2)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임영미 지음, CLC, 2016

3) 고고학자들의 카리스마를 클릭하라, 이요엘 지음, 평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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