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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r 12. 2016

엔게디 골짜기에서 다윗을 만나다.

다윗은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다. 

광야는 적막한 곳이다. 

사람도 없고 소음도 없다. 

보고 들을 것이 없는 광야는 외로운 곳이다. 

세상에 얽히고설킨 모든 것이 여기서는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 

광야에는 오직 자기 자신만 존재할 뿐이다. 

유대 광야 

우리 교회 중고등부는 일주일에 한 번 디지털 금식을 한다. 

제대로 지켜질지는 의문이지만, 현대인들에게 휴대전화와 컴퓨터가 없는 곳은 마치 광야와 같을 것이다. 

누군가를 판단할 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혼자 무엇을 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사해에서 바라본 광야

다윗은 고요와 적막함 속에서 하나님을 묵상하고 노래하였다.

다윗의 문학적, 시적 영감은 그렇게 나왔다. 

진정한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없다. 

다윗은 광야에서 양을 치며 영성을 키워나갔다. 

광야는 그가 지도자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모든 능력을 키운 곳이다. 

광야와 사해를 넘으면 멀리 모압 고원이 보인다. 

그가 골리앗을 만났을 때도 두렵지 않았다. 

온갖 첨단 무기로 무장한 골리앗보다 그는 광야에서 늘 함께하셨던 하나님만 의식하였다. 

광야에서 갈고닦은 실력과 영성은 그를 지도자로 만들었다. 

하루아침에 사울 왕의 사위가 되고,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 되었다.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엔게디 골짜기

그는 이제 냄새나는 천덕꾸러기 목동이 아니었다. 

사무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제 최고의 자리에 오를 것만 같았다. 

그런 그가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졸지에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가 도망친 곳은 엔게디(En gedi) 광야였다. 

엔게디 폭포(시간 관계상 이곳에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엔게디는 아랍어로 "새끼 염소의 샘"이란 뜻이다. 

엔게디는 쿰란 남쪽으로 35km, 맛사다 북쪽으로 10km 지점에 있다. 

사해 쪽에서 보면 높이가 600m 정도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이곳에는 엔게디 폭포가 있는데 남부 지방의 유일한 폭포다 

메마른 광야에서 엄청난 물이 솟아 나오는데 폭포 아래로는 비옥한 땅을 이루어 아가서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노래하였다. 

다윗 시대, 이곳에 포도원과 화초가 만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종려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엔게디

반면에 엔게디 골짜기 위는 넓은 고원이 펼쳐져 있다. 

그 고원과 절벽은 심한 침식으로 골이 파여서 복잡한 협곡과 동굴들을 만들었다. 

이곳이 바로 엔게디 광야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숨은 곳이 바로 엔게디 광야였다. 

그동안 출세 가도를 달리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여호와 하나님을 엔게디 광야에서 다시 찾게 되었다. 

성공, 출세, 명예, 부귀 등을 다 버리고 적막한 광야로 숨어든 다윗은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광야는 자칫 무력감과 무료함에 시험을 받을 수도 있지만, 단순함과 고독함이 오히려 진리를 깨닫고 삶의 자세를 다시 정립할 수도 있다.

종려나무 숲 위의 정상이 바로 엔게디 광야다. 

다윗은 엔게디 광야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바로 하였다.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는 복수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승리하기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로 하였다. 

구약학자 갬브로니(J. Gamberoni)는 "피난처란 도망가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장소이지만, 다윗은 그 모든 것 대신에 여호와만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전환을 하였다.”고 풀이한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 이다.”(시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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