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7장
노인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돈이 없는 것 보다 말할 상대가 없는 것이다.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아프다.
이것은 비단 노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가장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똑 같다.
다윗은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치려한다.'고 말했다.
그때 다윗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의 짧은 시구 하나로 어찌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고 한다.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선교하고 목회했는데 그들이 바울을 배신하였다.
그는 죽고 싶은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제자들도 배신하고 다 도망친 상황에서 홀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세상 그 누구가 이런 아픔을 당할 수 있을까?
사실 외로움과 아픔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성경에서 말하는 이런 상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모두 고독한 존재다.
나도 요즘 마음이 몹시 힘들고 어려워 글쓰기를 잠시 놓을까 생각하였다.
그러나 내 글을 읽고 위로가 되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다는 한 형제의 문자 하나가 나에게 큰 격려가 되어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묵상할 글은 특별히 다윗이 힘들고 어려울 때 그의 친구가 되어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무엘하 17장은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칠 때의 이야기다.
그가 피난갈 때 시므이는 다윗을 조롱하고 저주하며 돌을 던졌다.
다윗은 자신이 받아야 할 벌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대응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는 충신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하고, 살인죄를 저질렀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엄청난 죄악이다.
그의 가정은 파괴되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반역하고, 그 아들이 벌건 대낮에 자신의 후궁을 범하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이제 지도자로서 권위와 존경심을 다 잃어버리고 도망치는 다윗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다윗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죄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할 징벌이라 생각하지만, 그런데도 가슴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모두가 자신에게 손가락질하고 뒤에서 욕하는 것 같다.
바로 그때 다윗을 지지해주고 편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은혜요 축복이다.
다윗의 오랜 친구 후새는 목숨을 걸고 다윗 편에 서서 지혜를 짜내었다.
그가 상대할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하는 아히도벨이었다.
그의 질서정연한 논리와 설득력을 따라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다윗을 일거에 섬멸할 계획을 제안하였다.(사무엘하 17:1-4)
강력한 군사력으로 당장 다윗을 추격하고 야밤에 기습하여 섬멸하자는 이야기였다.
아히도벨의 계획을 듣는 후새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 자신의 친구 다윗이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마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것이다.
아히도벨의 지략에 대적하여 이기려면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가능했다.
압살롬의 귀를 어둡게 하고, 그의 머리를 둔하게 하여서 자신의 계략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한 도전과 같았다.
후새도 압살롬에게 계략을 제안하였다.(사무엘하 17:7-14)
언제나처럼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말도 안 되는 후새의 계획을 받아들이도록 역사하였다.
후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윗에게 밀정을 보낸다.
아히도벨의 계획대로 한다면, 다윗이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이 밤 반드시 요단을 건너 멀리 도망치라고!
후새는 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이 긴급한 정보를 전했다.
두 제사장은 각기 자기의 아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발각되면 집안이 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1.6km 떨어진 바후림에 도착했을 때 결국에는 발각되고 말았다.
더욱이 바후림은 사울의 친족 시므이가 사는 동네로서 옛날부터 사울쪽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그때 바후림에 사는 한 이름 모를 여인이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녀는 자기 집 우물 속에 두 젊은이를 숨겨두고, 그 위에 덮을 것으로 덮고 찧은 곡식을 널어서 위장하여 살려주었다.
자기 우물이 있다는 것은 그 당시 상당히 부유한 집안의 여인이라는 증거다.
그녀는 모든 재산과 생명을 걸고 다윗 편에 섰다.
아쉽게도 성경은 그녀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이름을 기억하였을 것이다.
후새가 벌어 놓은 시간 덕분에 다윗은 마하나임 성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밤새 달려서 마하나임에 도착한 다윗은 피곤하여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때 세 명의 이방 사람이 다윗을 도와주기 위하여 찾아왔다.
자기 아들은 자신을 배반하고, 자기 동포들은 모두 힘 있는 압살롬 편에 섰는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방 사람들이 그를 돕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첫째는 랍바(지금의 암만)에 사는 암몬 족속 나하스의 아들 소비다.
성경학자들은 그를 암몬 족속의 왕으로 추정하고 있다.
둘째는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이다.
마길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돌보던 사람이었다.
아마도 다윗이 므비보셋을 극진히 대해 준 것에 감동하여 이제 다윗을 돕겠다고 찾아온 것 같다.
세 번째는 나이 80이나 된 바르실래라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 다들 조용히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하는데 바르실래는 그 모든 편견을 뛰어넘고 생명 바쳐 다윗을 도와주었다.
나중에 다윗은 바르실래의 자비로움에 감동하여 예루살렘에서 같이 살자고 초청하였다.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던 아들과 동족은 다 자신을 배반하였는데 이렇게 뜻하지 않은 도움의 손길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다.
오늘도 외로운 가운데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에게 이 찬양을 드리고 싶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 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