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은 행복했을까?
신사임당은 조선 역사상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서화에 능통하였으며, 조선시대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자의식이 강한 여자였다.
그녀는 사임당이라는 호를 스스로 만들어 아버지 신명화로부터 승낙을 받아내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신세대 여성이다.
딸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아버지 신명화는 사임당의 남편을 고르는데 신중하였다.
문벌이나 가문 좋은 집안으로 시집을 보내면 일평생 호의호식하면서 살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임당의 예술적 끼와 학문은 제대로 펼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풍이 확고하여서 시집살이 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 집안은 일부러 피하였다.
그는 딸의 예술적 재능을 키워줄 상대를 고르기 위하여 고심하였다.
결국 마음씨 착하고 겸손한 이원수와 결혼케 하였다.
이원수는 비록 마음씨가 착하긴 하였지만, 사임당처럼 학문에 뜻을 두지 않았다.
부부 사이에 전해 오는 대화를 보면, 사임당이 남편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듯하다.
아내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 이원수가 과연 행복했을까?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이야기가 전해지긴 하지만, 사임당 부부의 삶이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후일 사임당의 반대를 무릎쓰고 주막집 여자인 권씨를 후처로 들인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너무 뛰어난 부인을 둔 이원수는 사임당과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둘 사이에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기 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정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사감 선생님 같은 사임당보다 평범한 아낙네의 따스한 사랑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후처인 권씨가 따스한 사랑을 나누어주는 여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임당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아주 저급한 여자였다.
새벽부터 술을 마셔야만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일에는 불같이 화를 내는 천박한 여자였다.
이원수와 신사임당 부부 생활은 생각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여 일생 행복하게 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여행을 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라도 함께 며칠동안 같이 여행하면서 살아보면, 뜻이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반대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만남을 통하여 우정이 싹트고 일생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두 사람이 서로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게다가 사랑까지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과연 그런 사랑과 우정이 공존하는 관계가 얼마나 될까?
사랑과 우정이 같이 갈 수 있다면, 그건 진짜 행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