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존스 설교 새롭게 읽기 13
로이드 존스는 영국교회의 부흥을 간절히 소망하였다.
그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교회를 크게 짓는 외적 성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의 부흥을 원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굳어진 마음을 만져주셔서 부드럽게 하시고, 증거되는 말씀 앞에 눈물로 반응을 보이는 진정한 영적 부흥이다.
그의 설교에는 이런 하나님의 부흥을 사모하는 마음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정말 좋은데 어떻게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네!"
어떤 회사의 CEO가 직접 광고에 출연해서 했던 말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까?
정말 좋은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의 놀라운 복과 함께 주님과 동행하며 인도함을 받는 복이 넘치는데.
우리는 전도할 때마다 사람들의 무관심에 놀란다.
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을까?
그것은 저들의 마음이 죄로 말미암아 무디어지고 둔하여졌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고후4:3-4)
불신자들의 마음은 혼미하여서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저들은 생명의 말씀인 성경의 소중함은 전혀 모른다.
많은 사람이 이 책으로 새 생명을 얻고 인생관과 가치관이 변하여 위대한 삶을 살았다 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다.
놀라운 사실은 불신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도 같은 잘못을 범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안타까이 탄식하며 말한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1:2-3)
이사야의 이 말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반박할지 모른다.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았느냐?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느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드리는 형식적인 제사와 예배에 신물이 나셨다.
시골에 계신 노부모님이 서울에 있는 자식에게 전화하였다.
“애야! 이번 명절에는 꼭 얼굴 한번 보자. 한번 내려와라!"
“아유! 알았어요! 노인네 되게 재촉하네!"
그리고 명절날 부모님 집에 선물 하나 가지고 가서 “됐지요. 얼굴 봤으니 됐지요. 직장 일이 얼마나 바쁜지도 모르고. 이제 올라갈게요!” 한다면 부모는 어찌 생각할까?
'내가 저놈을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를 했는데 이제 부모가 기력이 떨어졌다고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구나!'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비슷하다.
형식적인 제사 드리고 신앙생활 다 한 줄로 착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하였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형식뿐인 그들의 모습에 하나님은 고개를 흔드셨다.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겉모습에 하나님은 화가 나셨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가면을 쓰고 드리는 위선적 예배는 토해버리고 싶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소나 나귀를 들어 이스라엘의 모습을 비판하였다.
이 세상의 가장 고집이 세고 다루기 힘든 동물인 소나 나귀도 주인이 먹을 것을 가지고 가면 즉시 주인을 알아보고 다가온다.
그것은 생명 보존 본능을 따른 동물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불행한 것은 인간은 소나 나귀보다 어리석어서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가는데 이스라엘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도 하고, 좋은 것을 먹을 줄 알면서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편안한 삶을 위하여 돈을 모으기 위해 온갖 노력과 시간을 쏟으면서 하늘의 보화를 쌓는 일에는 게으르다.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견디기 힘들어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도 천하태평이다.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과 과히 틀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도 하늘과 땅을 소환하여 가슴 답답함을 호소할 것이다.
성경의 말씀은 불신자들에게 주는 말씀이 아니다.
그들은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한다.
성경의 말씀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는 말씀이다.
그런데 자녀들이 말씀의 소중함과 생명력을 알지 못한다.
영혼을 위한 생명 양식의 귀중함을 알지 못하는 이 백성은 지금 사망의 그늘 아래서 졸며 자고 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롬13:11)
대한민국 교회와 성도들이 영적으로 깨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로이드 존스 "이사야1장 강해"의 두 번째 설교 '무지'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