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생존을 위해서 필요하다. 양이 풀을 뜯어 먹을 때 아무 걱정 없이 낙천적인 생각을 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끊임없이 주변을 돌아보며 걱정해야 살 수 있다. 연약한 양은 태생적으로 걱정하며 살 수밖에 없다.
반면에 사자는 온종일 배를 드러내고 뒹굴뒹굴 거리다가 저녁때가 되면 양 한 마리 잡아먹을까 하고 어슬렁거린다. 사자 같은 사람이라면 걱정거리가 별로 없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약이 진통제라니 인간은 양과 같이 약한 존재인듯하다. 걱정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 걱정 때문에 인류 문화는 지금까지 발전했다. 우리 옛말에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이 있다. 평소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근심이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걱정이 지나칠 때 일어난다. 미시간 대학 심리학 교수인 놀렌-획스마(Nolen-Hoeksema)는 오버씽킹(over-thinking)이라는 개념으로 과도한 걱정을 설명한다. 오버씽킹은 단순히 걱정하거나 깊게 생각하는 정도를 넘어서 부정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현상을 뜻한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상상하여 염려하거나, 하지 않아도 될 자질구레한 것까지 걱정하거나, 고민한다고 변화될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괴로워하는 것을 뜻한다. 진짜 걱정해야 할 일은 걱정하지 않고 쓸데없는 것으로 마음을 낭비한다.
다윗은 일생 걱정거리에 둘러싸여 살았다. 목자로 양을 칠 때 그는 야생동물의 침입을 늘 염려해야 했다.
그의 걱정은 물맷돌 던지기의 달인으로 만들었다.
장인인 사울 왕의 위협을 피해 도망칠 때는 사방을 경계하여야 했다. 언제 한번 마음 편히 잠 좀 자봤으면 하였을 상황이었다. 편하고 안전한 곳이 아닌 동굴 속이나 큰 바위에 기대어 잠을 잘 때가 많았다. 그래도 어디든 머리만 대면 잠이 쏟아지는데 꿀과 같았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2)
사울을 피하여 원수의 나라 블레셋에 망명했을 때는 더 큰 시련이 다가왔다. 다윗과 부하의 모든 가족이 아말렉 족속에게 잡혀갔다. 아말렉 족속은 광야를 배경으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족이었다. 그들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울 기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목 놓아 울었다. 다윗의 부하들은 그를 돌로 쳐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자기를 따르던 부하들이 손에 돌을 잡고 무서운 눈초리로 쳐다볼 때 다윗은 얼마나 황망하였을까?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다시 리더십을 회복하였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30:6)
그 후에도 우여곡절은 많았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맨발로 예루살렘을 도망쳐 나올 때 모두 통곡하였다. 이스라엘 모든 족속이 다윗 대신에 압살롬을 따를 때는 정말 사면초가였다. 다윗은 그때 경험을 이렇게 말하였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시27:3)
다윗은 자기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순간순간 경험하였다. 그가 모든 위기 가운데 걱정만 하였다면, 노이로제나 신경쇠약에 걸려 죽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23:6)
그의 자신감은 지나온 삶에서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체험하였기에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나를 따를 것을 확신하였기에 그는 담대하다. 다윗이 걱정하지 않는 것은 목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하였다.
“내가 사는 동안
날마다
주님의 아름다움과 사랑이
나를 따르리니
나!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
평생토록 그곳에서 살겠습니다.”(시23:6)